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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전주영화제 '디지털삼인삼색' 제작발표회

디지털의 자유로움 마음껏 펼쳐낸다

올 전주국제영화제 '디지털삼인삼색'에 참여하는 젊은 감독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왼쪽부터 아핏차퐁 위라세타군·츠카모토 신야·송일곤 감독. ([email protected])

올해로 여섯번째 맞은 전주국제영화제의 간판 프로젝트 ‘디지털삼인삼색’은 초기 디지털이란 매체의 탐색단계를 넘어 디지털 영화의 미학적 표현력과 대안영화로서의 가능성을 확인한다.

 

전주영화제의 올해 선택은 송일곤(34·한국) 아핏차퐁 위라세타쿤(35·태국) 츠카모토 신야 감독(45·일본). 이미 영화제작 과정과 그 수용방식에서 많은 변화를 일으키고 있는 디지털의 잠재력에 대한 논의를 본격화하고 실천할 시기에 만나는 세 명의 감독은 독창적인 영상언어로 세계의 주목을 받고있는 아시아의 젊은감독들이다.

 

“2005년의 한국영화 시장을 보면 자본의 벽이 굉장히 높다는 생각이 들어요. 상업영화 구조 속에서 많은 한계를 느끼고 있었는데 전주영화제의 연락을 받고 깜짝 놀랄만큼 기뻤습니다.”

 

‘꽃섬’ ‘거미숲’ ‘깃’ 등에서 뚜렷한 작가의식으로 급격한 변화를 보이며 차기작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송일곤 감독은 “3년 동안 ‘거미숲’을 준비하면서 상업영화 시스템 속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고 말했다.

 

“해체된 밴드의 이야기를 31분 동안 한 컷으로 담아낼 예정입니다. 31분이란 절대시간 동안 과거, 현재, 미래가 공존하는 작품을 찍고싶어요.”

 

영화 속에서 강한 자의식을 드러내는 송감독은 음악에 몰입했던 고등학교 1학년 시절을 떠올리며 자전적 요소가 강한 ‘마법사(들) magician(s)’(가제)을 제작한다. 음악을 통해 청춘을 보냈고 마법의 세계를 경험했던 인디밴드 ‘매지션’의 좌절과 잃어버린 마법의 힘에 대한 동경을 그린 작품.

 

그는 “자유로움을 느끼며 이번 작품을 제작하고 싶다”며 “어두운 스토리지만 희망을 찾는 관객들에게 잔잔한 체험의 순간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1999년 ‘소풍’이 칸국제영화제 단편경쟁 부문 심사위원 대상을, 2001년 ‘꽃섬’이 베니스국제영화제 관객이 뽑은 신인감독상을 수상했다.

 

“태국 영화는 국제적인 인지도를 얻고있지만, 사실상 태국 내 영화 시스템은 상업적인 이유로 건강하지 못합니다. 타 매체로 만들 때 느꼈던 중압감에서 해방돼 디지털 매체의 자유로움과 영화를 만든다는 기쁨을 즐기면서 제작하고 싶습니다.”

 

아핏차퐁 위라세타쿤 감독은 전주영화제의 반가운 얼굴이다. 그의 첫 장편 데뷔작 다큐멘터리 ‘정오의 낯선 물체’는 2001년 전주영화제 우석상을 수상했으며, 장편영화 ‘비밀요원 ‘철고양이’의 모험’은 지난해 전주영화제 경쟁부문에서 상영됐다. “영화를 만들 수 있도록 경제적 지원을 해주는 것 자체가 영화 만드는 사람으로서 행복하다”는 아핏차퐁 감독은 “그동안 제작해 왔던 작품과는 분명 다른 것들을 보여주겠다”고 말했다.

 

“칸영화제 경쟁부문 심사위원상을 수상한 ‘열대병’에 이어 이번 영화도 밀림이 배경입니다. 다양한 생명체들이 살아가고 있는 밀림의 낮과 밤을 두 대의 카메라로 촬영하고 편집을 통해 흥미로운 결과물들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그의 작품 ‘세계의 욕망’은 “정글이 욕망으로 가득 차 있는 생명체일지도 모른다”는 아이디어에서 시작됐다. 인간의 모습을 흠모해 온 미지의 생명체들이 인류 멸망 후 인간과 비슷한 모습으로 자신들의 세상을 다시 창조한다는 내용.

 

자신이 설립한 영화사 ‘킥 더 머신’을 통해 실험영화와 독립영화를 제작하며 세계 주요 영화제의 주목을 받고있는 그는 디지털 영화 제작자들을 지원하며 태국 내 새로운 목소리를 내고싶다고 밝혔다.

 

“지금까지 필름작업만 고수해 왔지만, 20년 전부터 비디오적인 표현에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일반영화와는 다른 독특한 작업을 선보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대형스크린에서 보여지기 때문에 결과적으로는 디지털장비를 이용, 필름같은 표현을 이끌어 내려고 합니다.”

 

“디지털의 미래에 대해 생각해 보는 기회가 될 것 같다”는 츠카모토 신야 감독은 “지금까지 자유로운 작업을 해왔기 때문에 상업영화에 대한 대비로서 디지털의 자유로움을 느끼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나의 영화들을 관통하는 일반적인 주제는 인간의 몸과 그것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 즉 인간의 몸과 도시였습니다. 관객들 역시 이 작품을 통해 육체적인 감각을 경험하기를 바랍니다.”

 

‘탈출프로젝트’(가제)를 제작하는 츠카모토 감독은 “인식의 불확실성과 그것에서 나온 어떤 분명한 것을 찾고자 한다”고 말했다. 점점 죄어오는 좁은 공간 안에서 고통을 느끼는 한 남자가 탈출을 시도하는 과정과 의식변화 등을 담은 작품. 미술을 전공, 영화에 대한 독특한 감각을 키워온 그는 다소 파격적인 스토리를 시각적인 이미지로 표현할 예정이다.

 

츠카모토 감독은 대부분의 영화에서 감독·각본·제작·촬영·편집·미술·연기 등 1인 7역을 담당하며 자신만의 고유한 영화세계를 펼쳐왔다. 이번 작품에서도 소규모 스탭과 장비로 진행, 등장하는 배우들을 긴장시키지 않고 생생한 것들을 포착해 낼 생각이라고 말했다.

 

선택에 관한 뒷이야기

 

#1. 선택 하나, 송일곤 감독 “저는 영화를 굉장히 찍고 싶어요.”

 

부모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소신있게 서울예전 영화과에 진학한 송일곤 감독. 그만큼 어려움도 많았다.

 

1996년 데이콤 CF. 어머니의 전화를 받고 눈물 흘리는 유학생이 바로 송일곤 감독이다. 영화 제작비 마련을 위해 CF에도 출연했었던 그는 “굉장히 영화를 찍고싶다”며 “디지털 삼인삼색은 표현할 수 있는 욕구를 충족시켜줄 고마운 기회”라고 말했다.

 

‘자신만의 세계가 분명한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으로 왕가위 감독의 공동제작 제안까지 거부한 ‘자존심’있는 젊은 감독이다.

 

#2. 선택 둘, 아핏차퐁 위라세타군 감독 “내 영화 색깔은 녹색”

 

“아버지의 이름을 해석하면 ‘녹색’이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점을 봤는데 저한테는 녹색이 행운의 색이라고 해서 속옷이든 무엇이든 녹색을 입고 있어요.”

 

‘디지털 삼인삼색’이란 제목에 맞춰 세 명의 감독들에게 ‘자신의 작품은 어떤 색깔인가’라는 질문이 던져졌다.

 

아핏차퐁 감독은 “작품 색깔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은 없지만, 내 색깔은 녹색인 것 같다”며 가장 유쾌한 답변을 남겼다.

 

송일곤 감독은 “오렌지색 계열이 많았으면 좋겠다”는 모호한 답변을, “그동안 차가운 색깔을 고수하다 보니 약간 지겨워졌다”는 츠카모토 감독은 “최종적으로는 녹색으로 가고싶다”고 말했다.

 

#3. 선택 셋, 츠카모토 신야 감독 ‘3억불의 예산과 미국 날려버리기?’

 

츠카모토 신야 감독의 영화에 매료된 ‘킬빌’의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은 그의 데뷔작 ‘철남’ 3편을 할리우드에서 만들 것을 제안했다.

 

그러나 츠카모토 감독의 대답은 “3억불의 예산과 미국을 완전히 날려버리는 설정을 허락해 준다면 고려하겠다”. 역시 괴짜감독답다.

 

디지털 삼인삼색 ‘탈출 프로젝트’에서도 괴짜감독은 사람의 몸이 갈갈이 찢겨지거나 피 흘리는 모습, 시체들이 떠있는 연못 등 파격적인 소재들을 시각적으로 담아낼 예정이다. 그는 “배우들을 긴장시키지 않고 날것과 같은 영화를 만들겠다”고 말하지만, 시놉시스만으로도 배우들은 충분히 긴장할 것 같은 예감(?)이다.

 

도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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