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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진 것 쓰는 것이 좋은 일"

재활용 집 지은 잡지수집가 서상진씨 부부

남들이 버린 물건들을 모아 30평 집을 지은 서씨 부부. ([email protected])

요즘 그 앞에는 두 종류의 책이 놓여있다.

 

‘재활용집’에서 살아가는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은 책과 낡은 책냄새를 풍기는 서고에 빼곡히 꽂혀있는 잡지들이다.

 

‘잡지수집가’로 유명한 서상진씨(52)와 그의 아내 박선진씨(56). “집에서 100km 밖으로 나갈 때는 교통비 만큼 무엇인가를 얻어올 수 있는가 몇 번씩 고민한다”는 이들 부부가 오랜만에 전주 외출을 했다.

 

“많은 것들이 버려지는 시대, 세상 사람들의 도움으로 1천만원에 30평 집을 지었습니다. 처음부터 완성될 수 없는 집이었죠. 그러나 어차피 인생은 과정 아닙니까.”

 

진안군 주천면 무릉리 강촌마을. 장수보다 더 깊은 시골을 찾아 보따리를 싼지 벌써 3년이다.

 

교회에서 버린 예배용 의자, 고등학교 마룻바닥, 학교 칠판과 창틀…. 건축에 필요한 기본적인 것을 제외하고는 남들이 쓰다버린 것들만 주워다 만든 재활용집은 아직도 공사중이다.

 

“세상살이에서 어렵지만 중요한 일에는 모두 ‘짓기’라는 말이 따라붙죠. 내가 6개월 동안 부지런히 ‘집짓기’를 하는 동안 아내는 ‘밥짓기’를 해줬죠.”

 

결혼 10년만에 새로 장만한 집이 재활용집이라 서운할 법도 하지만, 아내는 “완성품에 들어가 살면 밖에서 사다가 쟁이고 바르는 일 밖에 더 하겠냐”며 웃었다.

 

“집을 어떻게 볼 것인가가 문제죠. 반듯반듯한 집에 익숙한 사람들은 자기 손으로 돈 천만원 들여서 지었다고 하니까 오두막을 생각하나봐요. 직접 와보면 모두들 저택이라고 놀라죠.”

 

남편 보다 셈에 둔한 아내 역시 이제는 헌 것을 볼 때마다 어떻게 쓸까부터 고민한다.

 

“내가 욕심이 없는 게 아니라 사회가 나에게 돈을 안줘요. 돈을 쫓다보면 노예가 되니까, 그냥 돈없이 자유롭게 살겠다 한 거죠.”

 

서씨는 “자본주의에서는 돈을 적게 쓰는 것이 절약이고 환경보호”라며 “남들이 버린 것 쓰면서 좋은 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내 철학”이라고 말했다.

 

“집 짓는 과정을 하루 하루 기록해 놨어요. 지금 쓰고있는 책은 내가 재활용집을 짓게 된 이유와 임금없이 집 짓는 것을 도와준 사람들, 지금까지 살아온 방식, 그리고 잡지를 수집하게 된 이유들을 담았습니다.”

 

잡지를 수집하게 된 이유. 그 앞에 놓여진 또하나의 책은 바로 1만여권의 잡지들이다.

 

독학으로 공부하던 서씨가 교과서를 구하기 위해 헌책방을 찾으면서 시작된 잡지수집은 이제 업보가 됐다.

 

“초기에는 잡지 표지도 화가가 그리고 제호도 서예가가 썼어요. 옛날이라고 해도 뒤떨어지는 것 없이 지금보다 더 진보적이어서 쭉 훑어보면 참 재미있어요.”

 

그는 오래된 책냄새를 맡으면 역사가 느껴진다고 했다.

 

가장 오래된 잡지는 1896년 우리나라 최초 잡지인 서재필의 ‘대조선 독립협회보’. 초기 잡지인 ‘창조’ ‘소년’ ‘호남학보’ ‘정읍보강’ 등을 비롯해 1950년대까지 중점적으로 모아온 잡지가 1만여권이다.

 

“이제 이 잡지들은 개인이 들고있기에는 무거운 역사가 됐습니다. 훼손도 걱정이 되고, 또 개인이 가지고 있기에는 사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방자치단체가 수용해야죠.”

 

서씨의 이름이 밖으로 알려지면서 수도권에서는 잡지들을 기증해 달라는 요청이 들어오고 있다. 그러나 그는 전북이 완판본의 고장인데 어떻게 밖으로 내보낼 수 있겠냐는 생각으로 고집스럽게 잡지들을 붙들고 있다고 했다.

 

“귀중한 자료들이 묶여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는 그는 전북도나 전주시 등 지방자치단체가 기증을 요청해 온다면 기꺼이 내놓을 생각이라고 밝혔다. 남의 것을 요긴하게 얻어 쓴 만큼 이제는 그가 세상에 돌려줄 차례이기 때문이다.

 

도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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