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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영 교수의 재미있는 '익은말'] 먹어야 먹은 듯하다

믿음성 없는 사람이 하는 일은 완성되기 전에는 못 믿는다는 뜻으로 쓰는 익은말이다.

 

<근원설화>

 

어느 조그만 절의 주지가 그 절에서 수도하며 심부름을 하는 사미(沙彌)를 데리고 밭에 메밀을 파종하는데 사미가 싫증을 내므로 주지가 말하기를, “지금은 이렇게 고생스럽지만 가을에 맛있는 메밀국수를 실컷 먹을 것이 아니냐?” 하며 달래니 사미가 “먹어야 먹은 듯하지요” 했다.

 

그 후 메밀밭을 매며 주지가 “메밀이 이렇게 싹수가 좋으니 가을에 메밀국수를 많이 먹게 되었다” 하니 사미가 또 시무룩하게 “먹어야 먹은 듯하지요” 했다. 그 말을 듣고 주지는 나중에 무슨 재앙이 있어 수확을 못할지도 모른다는 뜻이겠지 여기고 그대로 넘겼다.

 

수확할 때 주지가 “이렇게 메밀이 잘 결실했으니 이젠 메밀국수를 많이 먹게 되었다” 하니 그때도 사미가 또한 “먹어야 먹은 듯하지요” 했다. 그 말에 주지가 역정이 나서 “이 자식아, 이렇게 거두어들이는데 무엇이 먹어야 먹은 듯하다는 말이냐?” 하며 힐난하니 사미가 또 “그래도 먹어야 먹은 듯합니다” 했다.

 

그 사미는 주지가 항시 말만 앞세우고 언행이 일치하지 못한 데 대한 은근한 불만에서 한 말이었다.

 

그 후 타작을 하고 메밀을 매에 갈아 주지가 메밀국수를 끓여 솥에서 퍼 상에 놓고 있을 때 사미가 부엌에 들어오는지라 주지가 “보아라! 이렇게 메밀국수를 많이 먹게 되지 않았느냐?” 하니 그때도 또한 “먹어야 먹은 듯하지요” 했다.

 

그 말을 듣고 주지가 크게 역정이 나서 부지깽이를 들고 사미를 때리려고 쫓아가다가 부엌 바닥에 놓은 밥상이 발에 걸려 상이 엎어져버렸다.

 

도망치던 사미가 그것을 보고 “보시오! 먹어야 먹은 듯하다니까요” 했다.

 

이 이야기는 홍만종(洪萬宗)이 쓴 ‘명엽지해(蓂葉志諧)’ 중 ‘열장복면(杖覆麵)’조에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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