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 경기전은 회화사를 전공하는 사람에게는 성지같은 곳이었어요. 조선시대 초상화의 최고봉을 이루는 태조 어진을 모신 공간이었기 때문이죠. 한국회화사 전공자로서 늘 가슴에 품고 있었던 태조 어진과 경기전을 조명하는 이번 기획전은 개인적으로도 의미있는 작업이었습니다.”
특별전 ‘경기전과 태조 이성계’를 실질적으로 준비해온 국립전주박물관 이수미 학예연구관(40)은 지난 1년동안의 준비작업이 결코 만만치 않았지만 그만큼 보람이 크다고 말했다.
지난해 초에 전주박물관에 부임한 그는 같은 해 6월부터 줄곧 이 기획전에 매달려 왔다. 기초 자료 조사를 거쳐 10월부터 시작된 보름동안의 학술조사에서 경기전과 태조어진의 의미와 가치는 더욱 확연히 증명됐다.
“기대는 하고 있었지만 태조 어진과 관련유물들의 가치는 참으로 놀라웠습니다. 밖에 노출되어 있는 어진 관련 유물들의 적지 않은 부분이 손상되거나 훼손의 위험에 처해있긴 했지만 그 자체만으로도 역사적 의미는 컸습니다.”
이연구관은 전주가 가장 전주다울 수 있는 바탕이 ‘경기전과 태조어진’이라는 생각을 더욱 확실히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태조의 어진을 전주에 모신것은 전주가 조선왕조의 본향이었기 때문이지요. 경기전은 정치사에서도 매우 중요합니다. 경기전을 짓고 관리해온 과정을 보면 당대 사람들이 왕권의 정통성을 어떻게 만들고 어떻게 지키려했는지, 또 왕조의 본향인 전주는 어떤 정체성을 갖고 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전주는 조선왕조의 가장 상징적인 역사적 공간일 뿐 아니라 전주사람들의 자긍심이어야 해요.”
그가 경기전에 특별히 주목하는 이유는 그것이 갖고 있는 역사적 의미 뿐 아니라 공간적 의미에도 있다. 어진 그 자체만으로도 가치는 특별하지만, 그것이 존재했던 공간이 함께 존재함으로써 살아있는 역사의 현장성과 연속성을 그대로 가질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경기전과 태조어진에 매달려 살았던 지난 1년은 고달프기도 했지만 서울의 가족들을 잠시라도 잊을 수 있을만큼 그에게는 의미있고 흥미로운 작업이었다.
“펼쳐놓고보니 아쉬움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전국에 흩어져 있던 관련 유물과 사료들을 한자리에서 모아냈다는 것으로도 작은 성과가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기왕에 마련한 기획전에 많은 관객들이 찾아오셨으면 좋겠어요.”
전주시청과 언론사는 물론, 관련기관의 자료를 샅샅이 뒤지고(?) 다닌 열정은 이번 기획전에서 충분히 빛이 나지만 그는 겸손했다. 그러면서도 주문은 단호했다.
“경기전은 전주가 가장 전주다울 수 있는 유산입니다. 그러나 전주와 전주사람들에게 경기전의 의미는 너무 일상적인 공간으로 안겨져 있는 것 같아요. 그것의 역사성을 찾아내 문화적 기반으로 가꾸어가는 데 보다 적극적으로 나섰으면 좋겠어요. 역사는 연속성위에서 제 의미가 있는 것 아닐까요.”
전통문화도시로 가는 전주, 완곡하지만 뼈아픈 아픈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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