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가’와 ‘아니메’는 만화와 애니메이션의 일본식발음이다. 어느새 ‘쓰나미’처럼, 일본만화와 일본애니메이션을 뜻하는 국제어가 됐다. 그만큼 아니메 등에 대한 전세계적인 인기가 뜨겁다. 현재 전세계 TV에서 방영되고 있는 애니메이션의 60%가 일본산으로 추정된다.
‘저패니메이션’으로도 불리는 아니메는 디즈니와 더불어 세계애니메이션을 양분하고 있다. 디즈니가 어린이들을 소구대상으로 삼았다면, 아니메는 다분히 성인취향이다. 그만큼 디즈니보다 철학적이고 펑크적이다.
아니메는 지난 60년∼70년대만해도 ‘철완아톰’으로 반짝 인기를 누린 것을 제외하고 디즈니에 비해 한수아래였다. 1초당 8∼12장에 불과한 리미티드기법은 제작비는 아낄수 있었지만, 1초당 24장에 달하는 디즈니 풀애니메이션을 쫓아가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러다 80년대들어 아니메의 전성기가 열린다. ‘우주전함 야마토’‘건담’‘신세기 에반게리온’등이 인기를 모았다. 디즈니에서는 맛볼 수 없는 비장미가 있었고, 종말론적인 강박관념까지 불어넣어 아니메만의 미학을 만들어냈다.
아니메의 역사는 미야자키 하야오(宮崎駿·64), 오시이 마모루(押井守·54), 오오토모 가쓰히로(大友克洋·51) 등 3명의 거장이 빚고 있다. ‘모노노케 히메’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등 1000만 관객의 기록을 세운 미야자키 하야오는 가장 일본적인 것을 세계화하는데 앞장선 감독이다.
헐리우드영화인 ‘매트릭스’시리즈의 자양분이 됐을만큼 미래사회에 대한 암울한 시각이 압권인 ‘공각기동대’와 ‘이노센스’의 오시이 마모루도 아니메의 스타.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아니메의 백미로 ‘아키라’를 꼽고 싶다. 사이버펑크의 대가인 가쓰히로의 ‘아키라’는 군국주의의 부활을 꾀한다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실사를 방불케하는 강렬한 영상으로 앞세워 인간의 파괴본능과 황폐화된 과학문명을 고발했다.
그런 가쓰히로가 ‘아키라’이후 16년만에 신작을 발표했다. ‘스팀보이’(Steamboy)다. 지난해 베니스영화제의 폐막작이자, 제작기간 9년에 240억원의 제작비를 들인 ‘스팀보이’는 가슴을 탁 트이게 하는 장대한 스케일이 압권이다.
아니메의 인기가 높아질수록 한국 애니메이션의 현실은 갈수록 초라하다. 아니메가 탄탄한 이야기구조로, 디즈니가 유려한 화면으로 승부를 걸었다면 한국애니메이션은 정반대다. 하필이면 아니메에서는 부실한 화면을, 디즈니에서는 허술한 이야기구조를 차용했다. 수십억원을 들여도 관객들이 외면하는 이유는 아니메 거장들의 프로근성과 장인정신의 부재때문은 아닐까. 하루빨리 제2의 김청기감독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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