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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포-사람과 풍경] 아리랑 부를때 동포애 느껴

동반대결 보는 축구원로 유평수씨의 감회

남북의 남녀 대표팀이 분단이후 처음으로 전주에서 동반 대결을 벌이는 것을 보는 축구원로 유평수씨(77·전 축구국가대표)의 감회는 남다르다.

 

남과 북의 대립이 극에 달했던 53년부터 55년에 국가대표를 지냈던 그로서는 반세기가 지난 지금 남과북이 하나가 돼 축구를 하는일이 꿈만 같기 때문이다.

 

서울서 열린 대학선수권 대회에 참가했다 6·25가 터지면서 완주 구이에 피난온 유씨는 인민군에 붙잡혀 위험한 고비를 맞았으나 그를 끌고가던 한 인민군이 “동무, 축구선수지”하며 알아줘 가까스로 풀려났던 경험을 갖고 있다.

 

건강이 좋지 않아 거동하기조차 불편한 몸이지만 유씨는 당장이라도 녹색 그라운드에 뛰어나가 손자뻘되는 남과 북의 선수들을 격려하고 싶은 심정이라고 말했다.

 

“국가대표 시절 경평축구단 주장을 지냈던 김용식 코치로부터 ‘경평축구’에 대한 이야기를 참 많이 들었는데 참 오랜만에 부활됐구만...김 코치 등 당시 경평축구에 참가했던 선배들은 북한과 우리는 하나라는 말을 참 많이 했는데.”

 

감격에 겨워하는 그는 이렇게 회고했다.

 

이번 동아시아 축구와 경평 축구는 성격이 다르기는 하지만 남과 북의 에이스들이 함께 겨룬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각별하다.

 

1929년 시작된 경평축구는 1935년 중단됐다가 해방 후인 1946년 3월에 경성에서 두번의 경기가 열려 양팀은 1승1패를 기록한 바 있다. 경평 대항전은 두 지역간의 축구수준을 가늠해볼 수 있는데다가 서로간의 라이벌 의식까지 작용, 국내 축구발전을 위한 일대 획을 그은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후 남북축구가 만나는데는 수십년이 걸렸다.

 

그것도 남녀 동반대결이 이뤄진 것은 이번이 처음.

 

유씨는 “북한 여자 선수들 일본과 경기하는 걸 봤는데 정말 잘하더라”며 승패를 떠나 열심히 뛰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고 전했다.

 

경기장을 찾은 수 많은 관중들이 남과 북을 가리지 않고 좋은 경기를 보일때마다 우뢰와 같은 박수를 보내고 민족의 노래인 ‘아리랑’을 부르는 모습을 보면서 가슴 뭉클한 동포애를 느꼈다는 그는 축구공 하나가 남과 북을 서로 이어주는 것 같다고 했다.

 

유씨는 1953년 한국을 대표하는 동남아 원정 축구단에 포워드로 뽑힌 뒤 그 유명한 ‘1만4060달러 사건’을 겪었다.

 

이승만 대통령이 1만달러 이상을 써가며 원정에 나서는 것을 허가하지 않아 선수단은 “친선경기때 번 돈으로 달러를 귀국즉시 반납하겠다”고 약속했으나 이를 벌어오지 못해 이 대통령이 진노한 사건이다.

 

“시대가 많이 변했지만 남과 북의 선수들이 외화가 없어 원정길에 나설 수 없었던 축구 선배들의 정신력 만큼은 꼭 기억해줬으면 좋겠다”는 그는 전주에서의 남북경기가 평화와 통일을 향한 하나의 초석이 되기를 기원했다.

 

위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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