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당공천을 반대하는 시군의회 의원들의 액션이 예사롭지 않다. 연일 정당공천 반대 목소리들이 튀어나오고 있고, 관련법을 재개정하지 않으면 의원직을 버리겠다는 으름장도 덧붙이고 있다. 지난 6월말 국회가 공직선거법과 지방자치법개정안을 확정한 이후 불거지고 있는 현상이다. 기초의원의 정당공천과 중선거구제 및 비례대표제 도입, 지방의원 유급제, 광역단체장 후원회 허용 등이 개정안의 골격인데 그중 기초의원과 시장군수의 정당공천에 대한 비판이 드세다. 시장군수들의 오랜 정당공천 폐지요구도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한술 더 떠 기초의원마저 정당공천의 틀 속에 몰아넣고 말았으니 반발할 만도 하다.
시장군수와 기초의원, 그들은 왜 정당공천을 반대하는가. 풀뿌리 민주주의가 훼손되기 때문이란 이유는 너무나 거창하고 사치스럽다. 보다 현실적인 이유를 들어보자. 전국 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 회장을 지낸 김완주 전주시장의 회고는 리얼하다. “시장 군수들 모임 때 공식적인 회의가 끝나면 술자리로 이어지는데 그때는 대개 지역 국회의원에 대한 노골적인 불만이 쏟아져 나온다. 공천을 받은 대가로 돈을 얼마 주었다느니, 인사청탁 각종 민원요구 때문에 귀찮아 죽겠다느니…등등 ” ‘성토대회’라고 할 만큼 국회의원에 대한 불만이 표출된다는 것이다. 점잖게 얘기해서 불만표출이지 아니꼽고 더러워서 꼴 못보겠다는 뜻일 것이다.
시장군수 공천제 폐지는 애당초 열린우리당의 당론이었다. 반면 한나라당은 공천유지였다. 그러던 것이 정개특위에서 기초의원까지 정당공천을 허용하고 중선거구제로 개정해 버렸다. 실은 중선거구제야말로 국회의원 자신들의 선거에 적용해야 할 제도가 아니던가. 유급제 시행으로 지방의원을 달래는 대신 지방정치인을 장악할 권한은 최대한 살렸다는 얘기인데 이는 풀뿌리민주주의를 사당화하려 한다는 비판을 받는 대목이다.
미국에서도 지방정부중 정당공천을 금지하는 곳이 80.8%로 허용하는 곳(19.2%) 보다 4배 이상 높다. 일본은 지방선거에서 정당공천제를 채택하고는 있지만 기초단체장과 의회의원은 무소속의 평균치가 93.7%에 이를 만큼 무소속 비율이 매우 높다.
우리의 경우 리서치 앤 리서치가 5개 군지역 성인남녀 1,5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2001.2.17)는 응답자의 72.7%가 기초단체장의 정당공천에 반대하고 있으며 특히 단체장을 지근거리에서 돕는 공무원에서 정당공천 반대비율(86%)이 가장 높게 나온 것은 눈여겨 볼만하다.
이런 현실에도 아랑곳 없이 여야간 주고 받기식 결과가 나오자 열린우리당 지방자치특위 위원장을 맡았던 심재덕의원(민선 1.2기 수원시장 역임)은 “당리당략적 측면만을 고려해 지방자치 발전에 역행하는 결정을 내렸다”며 나흘간이나 단식농성을 한 뒤 국회가 재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지방이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런데 지방의 목소리는 탄력을 받지 못하고 있다. 지방정치를 살리는 절실한 현안인데도….
정당공천은 국회의원이 단체장과 지방의원을 장악하는 확실한 수단이자 말 잘 듣게 하는 무기이다. 단체장이나 지방의원은 현실적으로 국회의원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 결과는 지방정치가 중앙정치에 예속되고 지방자치 역시 퇴보할 것이라는 데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는 것이다. 민선자치 10년째를 맞아 풀뿌리 민주주의를 실천하자는 마당에 지방정치인들이 주민 눈치를 보아야지 국회의원 눈치 보아서야 되겠는가. 지방정치인들이 눈을 부릅 떠야 하는 소이연이다.
/이경재(전북일보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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