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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해주 최대 발해유적에서 최초로 온돌 쌍구들 출토

"발해는 고구려 계승자"

지금까지 연해주 지역에서 발견된 적이 없는 발해시대 온돌 쌍구들이 1000여년만에 발견돼 고대사 연구사 연구에 획기적인 계기가 될것으로 보인다. 온돌구들은 고구려의 대표적인 주거문화양식으로 거란이나 여진족의 유적지에서는 발견된적이 없으며 완형이 고스란히 보존된 전례도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 번 발굴로 발해가 고구려의 문화를 계승한 것임을 보다 확실해졌으며 또한 중국의 동복공정이 허구임을 입증하는 단서가 될것으로 전망된다.

 

러시아 연해주 크라스키노(Kraskino·블라디보스토크에서 남서쪽으로 200㎞)츄카놉카 엑스페디디치아만에서 북쪽으로 400m 정도에 있는 소읍 발해유적에서 발굴작업중인 고구려연구재단(64·이사장 김정배)과 러시아 극동역사고고민속학연구소 중세실(실장 블라디슬라브 볼딘)은 성터 북쪽 34지점에서 10세기에 지은 것으로 추정되는 발해(渤海)주거지 온돌 쌍구들 유구(옛 건축물의 흔적)가 완형에 가까운 상태로 21일 출토됐다고 25일 확인,발표했다.

 

발굴된 유물은 추수막세편(연꽃무늬토기),허리띠장식, 철제 단조용 집게·칼·과대(허리띠 버클) 등 140여점이나왔다. 이 번엔 나온 온돌 쌍구들은 ‘ㄷ자’형태로 넓이 50㎡ 이다. 전체 온돌길이는 14.8m(폭 1∼1.3m,동쪽 4.7m,서쪽 3·7m,북쪽 6.4m)로 전형적인 발해시대 온돌 주거지의 완벽한 형태를 갗추고 있다.

 

이 온돌 구조는 2003년 중국 랴오닝성(遼寧省) 환런현(桓仁縣)에 위치한 홀본성(졸본 또는 오녀산성) 내에서 발견된 온돌 유적과 똑같은 형태를 띠고 있다.

 

두 겹으로 돌을 쌓고 돌을 엊은뒤 다시 흙을 덮은 전형적인 고구려식 온돌구조다. 이 온돌구조가 출토된 곳은 성의 북동쪽으로 1981년 금당지가 발견된 남쪽이다. 현지 발굴단장인 볼딘 박사는 “온돌문화는 한민족 외에는 찾아볼수 없는 독특한 주거방식”이라며 “이 번 온돌구들 발견으로 발해가 발해가 고구려의 맥을 이었다는 것을 확실하게 입증해주는 중요한 사료가 됐다”고 말했다.

 

이 온돌은 발해의 3번째 도읍 상경성이 위치했던 중국 헤이룽장(黑龍江)성 닝안(寧安)시 발해진(渤海陣) 4호에서 2003년 토된 총길이 2.7m 가량의 온돌보다 훨씬 더 큰 규모로 지금까지 발견된 발해의 온돌유적 중 가장 큰 것이다. 이번에 발굴된 온돌은 아궁이에서 지핀 불의 열기가 지나가는 통로(구들)가 둘인 전형적인 쌍구들 형태로 이는 보온 효과를 높이기 위해 고안된 형태다. 이 온돌은 육안으로 직접 구들과 돌을 쌓은 형태를 확인할 수 있을 만큼 온전한 형태로 남아있었다.

 

34지역 발굴 지휘하고 있는 예브게니아 겔만(Evgenia Gelman·여·46) 러시아 극동대 교수도 “발해가 고구려을 계승한 나라임을 분명히 밝혀주는 자요한 사료”라고 말했다. 이 방식은 중국 상경 용천부에도 보이지 않는 형태이며 고구려 국내성에서 발견된 형태와 같다. 따라서 그동안 중국이 줄기차기 주장해온 이른바 ‘동북공정’은 허구임이 입증될 것으로 전망된다.

 

한편 온돌구들이 발견된 인근 32지점에선,삼족토기발(그릇),기와 끝 장식품,반추차(노리개) 등도 출토됐다. 1일부터 시작한 발굴작업은 현재 40cm 까지 판 상태이고 앞으로 2m 가량의 깊이까지 더 파들어갈 예정이다. 발굴작업은 내달말까지 이어질것으로 보여 새로운 유물도 계속 출토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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