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가는 길, 가을 햇빛이 쏟아졌다. 가깝게 있거나 멀리 있거나 가을산은 조용하다.
생각이 깊어지는 계절. 지리산 옆 시인들이 모처럼 산길에 섰다. 남원에 살고 있는 곽진구 복효근 시인이다.
마음을 서로 두고 있는 선후배지만 지리산 동행은 처음이다. 모처럼의 나들이에 시인들은 즐거워했다.
산에 오면 말을 잊는 곽진구시인(50, 남원 서진여고 교사)과 지리산에 안길때가 가장 행복한 복효근시인(43, 남원 운봉중 교사)이 나즈막하게 나누는 시 이야기에 단풍 든 가을 산도 가만 가만 바람을 재웠다.
“산에 와서는 사람의 말을 버려야 할 것 같아. 이렇게 산길 걷다보면 내가 쓰는 시가 무엇인가. 왜 쓰는가를 생각하게 돼. 나이가 들어갈수록 글쓰는 일이 어려워지거든.”
“선배님의 시는 세상에 대한 깊은 안목이 드러나보여요. 제 생각에는 이제 비로소 시로써는 청춘인 것 같은데 너무 빨리 세월을 맞으시는 것 아닌가 싶어요.”
곽시인은 지난 99년, 시집 ‘그 말이 아름답다’를 낸 이후 공백기간이 길어지고 있다. 이렇다가는 시집 발간이 더 어려워지겠다 싶어 조만간 5-6년 동안에 낸 시를 묶어볼 생각이지만 후배의 애정어린 타박을 막지 않았다.
복시인은 지난 6월 시집 ‘목련꽃 브라자’를 냈다. 다섯번째 시집이다. 그는 열정적이고 진취적이다. 시세계 역시 그의 이러한 성정을 그대로 담고 있다.
“자네 시는 참 맛이 있어. 씹으면 씹을수록 맛이 나는 시. 자네 시는 마르지 않는 샘 같기도 하고. 나는 그 열정이 부러워.” 곽시인에게 후배는 정겨운 동료다. 지식도 깊고 건강한 그의 반듯한 삶이 좋단다.
후배 역시 곽시인의 찬찬한 심성을 좋아한다. 원래 다작이었던 선배의 시창작이 조금은 열정이 식어 보인 듯한 것이 불만이지만 곰삭은 그의 시가 쏟아져 나올날이 멀지 않았다는 것을 안다.
복시인이 길 옆의 풀을 뽑아 만든 풀피리를 불었다. 그는 지리산들꽃사랑회의 회원이다. 야생화에 눈을 뜬지 여러해째.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과 야생화모임을 만들어 활동하다가 지리산의 들꽃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지난 10월 초에도 이미 들꽃 답사를 한터였다.
그러나 곽시인은 좀체 지리산에 오르지 않는다. 가까운 거리에 나들이 나오듯 다녀가는 일은 다반사지만 산행으로 지리산을 찾은지는 오래다. ‘늘 눈에 넣고 가슴에 품고 살기 때문’이다.
남원 토박이인 두 시인은 ‘가을’을 좋아한다. 두말 할 것 없이 ‘생각을 깊게 할 수 있어서’이고, ‘시에 더 가깝게 갈 수 있어서’이다.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저 잎잎들/안쓰럽게는 지금 사라져 가는 저런 풍경들이/ 나를 눈물 나게 만드는데/무량의 이 눈물을 닦고 생각해보면/나도 저처럼 사랑하는 이의 앞에서/그 사랑을 기쁨이듯 접고/아무 일 없는 것 처럼 허허 웃으며 훌쩍 떠날 수가 있긴 있는 것인가’-곽진구의 ‘증발’ 중에서-
‘저 길도 없는 숲으로/남녀 여남은 들어간 뒤/산은 뜨거워 못 견디겠다는 것이다//골짜기 물에 실려/불꽃은 떠내려오고/불티는 날리고//안봐도 안다/불 붙은 것이다/산은’-복효근의 ‘단풍’-
두 시인에게 시는 일상의 풍경이다. 일상으로부터 나온 시적 언어들은 시인의 삶와 의식을 그대로 담아 낸다. 자연을 관조하는 사유의 결정으로서의 시세계를 지닌 곽시인과 서정적이고 친화력 강한 언어의 시세계를 지닌 복시인의 가을 나들이는 더 새로워질 창작의 출구다.
지리산 뱀사골 계곡을 따라 와운마을 가는 길. 단풍은 요란하지 않다. 화려하게 타오르지 않고서도 마음 앗아가버리는 나무들 사이로 바람이 지나간다.
“이 길 걸으면 모두가 시인 되겠어요.”
가을, 누구라도 시 한편 쓰고 싶겠다.
와운마을 가는 길
지리산 가는 길은 어느쪽에서나 풍경이 아름답다. 아름답기는 지리산에 들어서도 다르지 않다. 가을 색잔치가 한창인 지리산에는 단풍놀이 나온 사람들도 북적인다. 그러나 와운마을 가는길은 조용하다. 관광객들의 발길이 잘 닿지 않는 덕분이다.
국립공원 지리산 북부관리사무소에서 와운마을로 난 길을 따라가면 지리산의 하늘아래 첫동네인 ‘와운마을’에 닿는다. 입구에서 마을까지는 6Km. 입구쪽에서부터 3Km 정도의 흙길은 좁고 굴곡이 잦아 자동차로 오르면 허덕일 수 밖에 없다. 자동차의 수고로움도 그렇지만 나무와 길, 바람과 물소리가 함께 있는 이 아름다운 길을 걷지 않고 자동차로 오르는 일은 아쉽다.
굵지 않고도 키가 큰 나무들이 어깨를 잇고 잇는 이 길은 사계절 모두 아름답지만 특히 가을 길은 정취가 깊고 낭만적이다.
지리산의 가을 정취를 제대로 맛보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꼭 권하고 싶은 곳이다.
이 길을 따라가면 와운마을이 나오고 그 마을 뒷편에는 늘 푸르른 소나무 '천년송'이 있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이 소나무는 ‘할머니소나무’로 이름을 붙였는데 수형이 빼어나고 아름다워 와운마을까지의 답사가 더 행복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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