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드문 일이다. 가슴도 따뜻해지고, 마음까지 흐뭇해지는 한국영화가 나란히 선보였다. ‘광식이 동생 관태’와 ‘나의 결혼원정기’. 한편은 철없는 남자들의 성장통을, 다른 한편은 신토불이 농촌총각들의 신부구하기다. 두편 모두 부담은 없으면서도 재미와 감동이 만만찮다. 급하게 불붙는 마른 장작이 아닌, 구들장처럼 은근하면서도 여운은 길게 이어지는 훈훈한 영화들이다. 서로 닮았으면서도, 색깔은 분명한 두편의 ‘웰메이드 코믹멜로’를 들여다본다.
△광식이 동생 광태(감독 김현석·출연 김주혁 봉태규 이요원 김아중)
사랑에 버림받은 남자들의 아픔을 캐묻는 영화다. ‘광식이 동생 광태’는 사랑에 실패한 남자들이 조금씩 철이 들어가는 과정을 그린다. 그리고 여자에게 채이고 허전한 마음을 삭이지 못해 먼산을 쳐다보며 한숨을 내쉬는 궁상은, ‘소심남’이건 ‘작업남’이든 똑같다고 에둘러 말한다. 한마디로 철없는 남자들의 성장영화라고 할까.
형 광식이(김주혁)는 한 여자(이요원)만을 짝사랑하는 ‘해바라기남자’다. 꿈에도 그리던 이 여자를 7년만에 다시 만났는데도 가슴만 쿵쾅거린다. 번번이 다른 남자들이 사랑하는 여자를 빼앗아 가는데도 손을 뻗지 못한다.
반면 광식이 동생 광태(봉태규)는 바람둥이다. ‘매직넘버 12이론’의 신봉자다. 한 여자와는 쿠폰에 도장 찍듯 12번을 만나고 헤어져야한다는 원칙을 충실히 따른다. 광태는 그러다 천적을 만난다. 마라톤대회에서 한눈에 반한 경재(김아중)을 상대로 작업에 성공하지만, 이번에는 경재에게 헤어지자는 통고를 받는다. 천하의 바람둥이도 떠나간 사랑에 가슴앓이를 한다. 사랑에 실패하고 나란히 어깨를 마주한 형제들.
이미 ‘해가 서쪽에서 뜬다면’의 각본을 맡아 철없는 남자들의 애절한 사랑찾기를 선보였던 김현석감독은 ‘사랑에 소심한 쑥맥이거나 연애에 저돌적인 바람둥이건, 사랑의 끝은 쌉싸름하고 아프다’고 강변하는 듯하다. 하지만 그런 가슴앓이도 지혜롭게 세상을 살아가는 단방약이 될수 있음을 곱씹게 해준다.
‘광식…의 백미는 단연 재치만점의 대사들. “남자가 여자를 생각할 때는 두가지다, 배꼽 아래 마음과 배꼽위의 마음으로 말이다”라거나 “여자는 상대방 남자가 싫을 때 이도 저도 아닌 감정상태를 에둘러 표현하며 ‘고맙다’고 말한다, 비슷한 표현으로는 ‘오빤 정말 좋은 사람이예요’가 있겠어”“여자와 잘때 속마음은 윗도리 안주머니에 넣어둔다”같은 어록수준의 대사를 차근차근 펼쳐놓으면 마치 한편의 연애개론서가 될 법하다. 15세 관람가.
△나의 결혼 원정기(감독 황병국·출연 정재영 수애 유준상)
어찌보면 우울한 영화다. ‘나의 결혼 원정기’는 우리 사회가 안고있는 서글픈 현실을 끄집어낸다. 장가못간 시골 노총각들이 외국에서 신붓감을 구하기 위해 우즈베키스탄으로 떠난다.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탈북자 문제, 외국인 노동자의 비참한 현실도 곁들인다. 하지만 ‘나의…’는 차가운 현실을 따뜻한 로맨틱코미디로 버무려내는 저력을 숨기지 않는다.
연애는 엄두도 못내고 매일밤 몽정만 하는 만택(정재영)이나, 택시를 몰며 여자손님을 낚는게 낙인 친구 희철(유준상)은 농촌총각들. 연애농사를 짓기 위해 우즈베키스탄으로 떠나고, 만택은 그곳에서 금발미녀가 아닌 통역을 맡은 라라(수애)에게 마음을 빼앗긴다. 하지만 라라는 이들의 맞선을 반드시 성사시켜야하는 아픈 사연을 가진 탈북자. 영화는 시간이 흐를수록 만택과 라라가 점점 진심으로 접근하는 과정을 짜임새있게 보여준다. 다소 민감한 소재를 다루면서도 그리 무겁지 않고, 그렇다고 지나치게 희화화하지 않은 이면에는 정재영과 유준상이 버티고 있다. 극중에서 순박함으로 무장한 정재영과 능글맞은 유준상은 누가봐도 ‘노총각’들이다. 여기에 강단이 있으면서도 억척스러운 연기를 선보인 수애가 끼어들면서 방점을 찍는다.
제작진이 부지런히 다리품을 팔은 때문인지, 우즈베키스탄의 이국적인 풍경이 로맨틱코미디를 든든하게 지탱해준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 폐막작으로 이미 신고식을 치렀다. 당시 영화제측은 “많은 삶의 짐을 지고도 군소리 없이 자신의 인생에 충실한 변방의 사람들에게 보내는 진심어린 송가”라고 찬사를 보냈지만, 이 평가에 고개를 끄덕일 관객들은 그리 많지 않을 것같다.
참고로 야릇한 의미가 떠올려지는 ‘다 자빠뜨러’는 우즈베키스탄어로 ‘내일 또 보자’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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