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도 삼백하고 예순 다섯 날
허둥바둥 살아낸 나날들이
꽃밭에 꽃 지듯 하냥 저물고
돌아보면 아무개는 살으나 마나다.
바람 몰아치어든 흔들리며
칼날 꽂히어든 찢기우며
때절은 살과 뼈
핏물은 눈물로 헹구어 내었는가
그저 그렇게 삼백 예순날
빛 바랜 달력처럼 휴지쪽이다.
참깨씨만한 그리움도 기억 속이다
아무개의 삶밭은 허허벌판이다.
-시집 <서로가 서로를 원하는 이유는> 에서 서로가>
그 아무개의 삶밭, 바로 내 삶일 수도 있어
삼백 예순날 허둥바둥 죽은 듯이 살아온 아무개, 바람 몰아치면 흔들리고 칼날 꽂히면 찢기우며, 그저 그렇게 핏물 눈물 헹궈오며 살아온 그 아무개는 문자 그대로 사나마나다. 삶 전체가 온통 허허벌판이다.
허나 이런 절망이 어찌 그 한 사람만의 몫이겠는가? 이는 시인 스스로의 심적 고백이면서 동시에 응큼하게 감춰놓고 있는 모든 이의 고뇌의 처절한 대변이기도 하다. 새해에는 그 ‘아무개’에게 더욱 힘내라고 박수를 쳐주자. 왜냐하면 그가 바로 나 자신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 허소라(시인)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