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건 전 총리는 흔히 ‘행정의 달인’으로 불린다. 40년 가까이 쌓아온 그의 화려한 행정경력을 보면 여기에 토를 달 사람은 거의 없다. 반면 정동영 열린우리당 의장은 ‘정치 수재’로 불린다. 정치입문 불과 10년만에 급성장, 포스트 노무현의 확실한 반열에 올랐다.
이들 행정의 달인과 정치 수재가 지난 주 전북을 방문했다. ‘정치적 고향’을 찾은 이들을 두고 언론은 ‘대선 1라운드’ ‘전북 대첩’이라는 용어를 쓰며 촉각을 곤두세웠다. 특히 열린우리당은 고 전 총리가 경선 불참을 선언한 강현욱 지사를 만난 것을 두고 ‘하이에나’ 운운 하며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럴 것이다. 어찌 보면 5·31 지방선거를 두달 앞둔 지금 시점은 단순히 지방선거 이상의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더우기 전북이 변함없이 효자노릇 하기를 기대하는 여당으로선 자칫 안방을 내줄 염려가 있어 더욱 그러하다. 믿었던 전북이 지방선거를 기점으로 고건 발(發) 정계 개편의 진앙지가 될 개연성이 있다는 얘기다. 고 전총리와 정 의장은 지지층이 상당수 겹쳐 같이가기 힘들다는 게 중론이다.
이들 두 사람은 대권이라는 정점을 향하고 있지만 사뭇 다른 길을 걸어왔다. 고 전 총리가 행정의 달인으로 불리기까지 오랜 세월이 걸렸다. 박정희 정부이후 노무현 정부까지 7명의 대통령과 호흡을 맞춰왔다. 한번 하기도 힘든 장관을 세번씩이나 했고 서울시장 2번, 국무총리 2번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또 국회의원과 대학총장까지 역임했다. 이것이 오히려 양지만을 쫒는다는 비판을 낳기도 한다. 그러나 탁월한 행정능력과 청렴성이 없었다면 가당키나 할 일인가. 그는 민선 서울시장직을 마무리하면서 펴낸 ‘행정도 예술이다’에서 이렇게 말한다. “나는 예술에서 작가가 하나의 작품에 혼을 불어 넣듯 행정도 있는 정성을 다 쏟아 부어서 국민의 감동을 불러 일으켜야 한다는 지성감민(至誠感民)의 자세로 일하려고 노력했다”
이에 비해 고 전 총리보다 15살 연하의 정 의장은 파죽지세로 커 왔다. 96년 정계 입문과 함께 총선에서 내리 전국 최다득표를 했고, 최연소 최고위원, 2004년과 2006년 집권당의 당의장에 올랐다. 통일부 장관을 거치며 ‘콘텐츠 부족’도 메웠다. 그의 폭발력있는 연설을 들으면 몽골기병의 말발굽 소리가 느껴진다. 그렇지만 그는 피아(彼我) 구분이 확실하고 각(角)을 세우는데 능숙하다. 2000년 김대중 대통령이 주재한 청와대 간담회에서 2인자인 권노갑씨의 퇴진을 요구, 정풍운동을 일으켰다. 지금은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와 이명박 서울시장, 뉴라이트와 같은 수구 삼각편대와 대립하는 개혁중도세력의 연합을 호소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지난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를 끝까지 떠 받친 ‘경선 지킴이’ 노릇을 마다하지 않았다. 고 전 총리가 포용과 화합, 조정의 이미지라면, 정 의장은 열정과 집념, 돌파력의 이미지가 아닐까 한다.
이들의 좌우명도 흥미롭다. 고 전 총리는 목민심서에 나오는 지자이렴(知者利廉)을 좋아한다. 즉 현명한 사람은 청렴한 것이 이롭다는 것을 안다는 말이다. 대조적으로 정 의장은 구동존이(求同存異)를 내걸고 있다. 다른 점이 있더라도 같은 점을 취하면서 이견을 좁혀 나간다는 뜻이다. 각을 무디게 하는 보완의 의미가 있는 듯하다. 어쨌든 이들은 전북, 나아가 국가의 큰 자산들이다. 시대가 누구의 리더십을 원하는지 지켜 볼 일이다.
/조상진(전북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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