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의 남쪽(감독 안판석·출연 차승원 조이진 심혜진·드라마)
언젠가, 남북 이산가족 상봉현장에서 목격했던 모습이 떠오른다. 북녘의 남편을 그리며 평생을 수절한 남쪽 할머니의 망연자실한 표정이었다. 월북한 남편이 이미 북에서 가정을 이뤘다는 사실을 알고, 원망과 회한이 섞인 표정으로 말문을 트지 못하던 할머니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분단과 세월이 평범한 사람의 일상과 인생을 송두리째 빼앗은 셈이다.
‘국경의 남쪽’은 탈북한 한 남자가 북에 두고 온 애인-남에서 새로 만난 여인 사이에서 눈물을 곱씹는다. ‘남북분단’코드를 앞세웠지만, 전쟁스펙타클에 무게중심을 뒀던 기존 영화들과는 달리 ‘국경의 남쪽’은 멜로를 덧씌워 애잔하면서도 녹녹한 울림을 토해낸다.
‘국경의 남쪽’은 차승원의 영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코믹연기로 어느새 ‘흥행배우’반열에 올라선 차승원은 그동안의 익살을 버리고 비극적인 사랑에 몸부림친다. 신세대 평양처녀역의 조이진도 신인답지 않은 연기력을 보여준다. 영화에서처럼 ‘동치미처럼 쩡하고 시원한 처녀’다.
만수예술단의 호른연주자 김선호(차승원)는 평양에서 남부러울 게 없다. 6·25때 인민군으로 나가 전사한 할아버지의 후광으로 훌륭한 출신성분에 화목한 가족, 결혼을 약속한 애인(조이진)까지. 하지만 가족 모두 탈북을 결심하고, 애인에게 “남한에 가서라도 너를 꼭 구해오리라”고 다짐하며 두만강을 건넌다. 정작 남한에 정착해선 사기꾼브로커에 돈을 뜯기고 뼈아픈 현실에 심신이 지쳐버린다. 그러다 한 여자(심혜진)를 만난다. 2년여뒤, 평생 다시 만날 수 없을거라 생각했던 그의 첫사랑이 오직 그를 만나기 위해 국경을 넘어 남한으로 온다는 소식을 듣는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선호. 그저 메마른 눈물만 흘릴 뿐이다.
기억하고 싶은 대사들도 많다. 웃음을 퍼트리고 가슴을 후벼판다. 선호가 애인에게 사랑을 고백하면서 “국사발에 네 얼굴이 동동 뜨니 그 얼굴만 쳐다보다 국이 식어버린다 야”라고 할땐 미소가, 목숨을 걸고 남으로 내려온 애인이 다른 사람의 남편이 돼버린 선호를 향해 “그 여자의 젖가슴이 만져집디까? 그 여자 젖가슴이 만져지더냐고요”라고 외칠땐 콧날이 시큰해진다.
‘국경의 남쪽’에서는 남북한의 서로 다른 모습을 지켜보는 것도 흥미롭다.
평양대극장의 혁명가극 공연과 태양절축제, 대성산 놀이공원, 옥류관 냉면 등 북에서의 생활이 꿈결의 연속이었다면 남쪽에서는 고단하고 초라하다. 탈북자들을 외면하는 남한의 친척들, 탈북안내인을 차처하며 정착금만 빼돌린 사기꾼 등 일그러진 얼굴 투성이다. 북한사람들을 편견없이 대하자고 말하려는 듯싶다.
복선과 반전보다는 물흐르듯한 연출에 주력해서인지 후반부엔 다소 늘어진다는 평가도 없진않다. 12세 이상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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