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이 뜨끔했다. 웃옷을 걷어올리니 아이의 배는 온통 상처투성이다.
‘상처는 두렵지 않다. 다만, 그대의 시선이 아플 뿐.’
사진 옆, 작가가 남긴 짤막한 글이 가슴을 마구 두드렸다.
하루하루 짙어가는 모악산의 녹음, 그러나 그 품에 안긴 전북도립미술관(관장 최효준)은 계절과 상관없어 보인다.
앙상하게 뼈만 남은 아이들이 몸무게를 재기 위해 저울에 매달려야 하고, 삶을 위해 무거운 짐을 짊어져야 하는 이들. 지난해 5월 ‘미술관 속 동물원’전을 기획, 관객몰이에 성공했던 도립미술관이 올해는 그늘진 사람들로 시선을 돌린 것이다.
6월 25일까지 계속되는 ‘세바스티앙 살가도-절망에서 희망으로’전과 김중만 성남훈 ‘슬픈 눈 맑은 영혼, 내일을 열다’전. 전북도립미술관과 전북일보, 김영섭사진화랑, 전주문화원이 공동으로 주최한 이번 전시는 눈부신 5월에는 실험 아닌 실험이 될 수 밖에 없다.
‘불행한 현실을 우아하게 소비한다’는 비판도 있지만, 세바스티앙 살가도와 김중만, 성남훈은 쓰라린 현실을 가슴에 품고 세계 오지와 재난지역을 다니며 사진으로 기록해 왔다. 시대와 지역, 의식과 접근방식은 각기 다르지만 시각적 리얼리즘 안에 휴머니즘을 담아낸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인물사진을 주로 내놓은 김중만의 사진에서는 그러나 어딘지 모르게 상업성이 느껴졌다. 평범한 눈을 가지고 있다면 누구라도 자연스럽게 떠올릴 모 의류업체 광고. 그가 아프리카와 연예인 사진으로 유명한 작가란 걸 새삼 떠올리게 된다.
성남훈의 사진은 유난히 아름답다. 루마니아 집시, 몽골의 유목민, 맨홀에 사는 거리의 아이들, 전쟁을 겪고있던 보스니아 등 집시로, 이민자로, 난민으로, 떠도는 존재들이 아름다운 이유가 낯설다.
경제학자였던 세바스티앙 살가도는 극심한 가뭄과 기아로 고통받는 아프리카인들을 보고 다큐멘터리 사진가로 인생의 방향을 전환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가 왜 20세기 최고의 다큐멘터리 사진가로 추앙받는지, 작품을 보면 확인할 수 있다.
“밤과 낮으로 사람들과 함께 지내면서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그래서 종국에는 사람들이 나를 알게 되고 거의 의사처럼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 다음에는 아무런 무리없이 아름다운 순간들을 잡아낼 수 있게 된다.”
브라질의 세라 페라다 금광과 인도네시아 콰 이젠 화산의 노동자들, 죽은 아이들이 하늘로 가는 길을 쉽게 찾을 수 있도록 눈을 감기지 않은 채 매장하는 곳, 한때는 유명했지만 전쟁 후 폐허가 된 곳 등
피사체 삶 속으로 들어가 얻어낸 사진은 진정성과 사실성의 극치를 보여준다.
아름다운 것만을 찾는 요즘, 다소 어둡더라도 도립미술관 사진전이 주는 울림은 크다.
돌아오는 길, 최근 국가인권위원회가 펴낸 사진집 제목이 떠올랐다. ‘어디 핀들 꽃이 아니랴’. 어디서 어떠한 삶을 살더라도 생명의 소중함은 다 똑같다. 사진 한 장이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만드는 전시다. 풍요롭고 소비적인 삶에 함몰돼 있는 현대인들이라면 사진 속 비극의 땅이 한 줄기 희망의 빛으로 다가올 것이다.
<도립미술관, 이곳은 꼭!>도립미술관,>
1. 도립미술관 현관
햇빛이 잘 스며들 수 있도록 특별히 고안된 계단에 오르면 전시장 입구가 나온다.
쉽게 지나칠 수 있는 이 곳은 그러나 도립미술관에서 가장 좋은 경관을 볼 수 있는 곳이다. 구이저수지가 한 눈에 들어오기 때문에, 저수지를 등지고 사진을 찍어도 배경이 예쁘다.
바람 부는 날에는 시원한 바람을 맞기에도 좋다.
2. 나도 미술 비평가!
정보자료검색실 한 켠에 마련된 ‘나도 미술 평론가!’.
전시를 관람하고 감상을 적어놓으면 1주일에 1번 우수작품을 선정해 기념품을 선물한다.
‘비평가’라 해서 부담 느낄 필요는 없다. ‘감상’ 수준이면 충분하다.
3. 갤러리 디프
지난 2월 개관한 뮤지엄 샵 ‘갤러리 디프’는 미술관 속 또다른 전시장이다.
전북에서는 미술 전문서적을 구할 수 있는 유일한 곳으로 디지털판화, 도자공예, 섬유공예, 액세서리 등 30여명 작가의 작품과 소품을 감상하고 구입할 수 있다.
특히, 전업작가의 작품을 디지털화해 프린트하는 디지털판화는 8만원이란 저렴한 가격으로 미술가의 작품을 소장할 수 있는 반가운 기회다.
4. 놀이터와 분수대
도립미술관에서 아이들에게 가장 인기있는 곳이다.
도립미술관 광장에 마련된 놀이터와 분수대는 꼭 전시관람이 목적이 아니어도 가족들과 나들이할 수 있는 곳이다.
특히 분수는 개방형이어서, 물줄기 사이를 거닐어 보는 재미도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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