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선 이후 11년 동안 전북에는 2명의 도지사가 거쳐갔다. 유종근 지사와 강현욱 지사가 그들이다. 그리고 김완주 당선자가 벅찬 감동을 안고 스타트 라인에 서 있는 시점이다. 민선 4기 출범에 앞서 이들의 공과(功過)와 진로를 살펴보는 것도 의미있을 성 싶다. 이들에 대한 평가는 보는 눈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음을 전제로 한다.
우선 민선 1·2 기의 유종근 지사. 유 지사는 재임기간이 7년으로 정부 수립이후 가장 오랫동안 전북행정의 수장 노릇을 했다. 그 전까지 70년대 황인성 지사가 5년3개월을 역임한 것이 가장 긴 기록이었다.
그는 전북 정치권에 혜성처럼 나타났다. 미국대학 교수출신으로, 95년 민주당 경선에서 최낙도 전 사무총장을 제치고, 본선에서 강현욱 지사를 물리쳤다. 당시 김대중 아태(亞太)재단 이사장의 측근임을 내세워 극적인 승리를 일구어 낸 것이다. 그는 오랜 낙후와 중앙정치권에 눌려있던 도민들에게 자신감을 심어줬다. 국가예산 확보와 외자유치 등에 남다른 역량을 발휘했다. 또한 동계유니버시아드 대회의 성공적 개최와 군산자유무역지역 지정, 전주세계소리축제 등을 열었다.
반면 그는 자신의 발목에 족쇄를 채운 F1 그랑프리 무산과 함께 새만금 사업 등 곳곳에서 갈등을 초래했다. 특히 DJ 집권과 함께 대통령 경제고문으로 IMF 위기극복에 발벗고 나서 ‘화려한 시절’을 보내기도 했으나 그것이 오히려 명예스럽지 못한 뒤끝을 남겼다. 민주당 대선 예비후보 등 끊임없이 중앙무대를 노크했고 걸핏하면 ‘도정 공백’ 논란을 낳았다. 측근들의 인사와 이권개입 시비도 불거졌다. 그는 부인과 함께 튀는 언행이 잦았고 고관집 절도사건 등 후반으로 갈수록 공사(公私) 구분도 흐려졌다. 결국 세풍사건으로 도민들에게 ‘심려를 끼치는 결과’를 가져왔다.
다음 민선 3기의 강현욱 지사. 그는 88년부터 2년 1개월간 관선지사를 지냈으며 각각 2번씩 장관직과 국회의원을 역임한 바 있다. 그는 출범 초기 다소 터덕거리는 모습을 보였다. 동계올림픽 유치 무산과 새만금 1심 재판 패소 등 힘겨운 첫걸음을 내딛었다. 그러나 중반을 넘기면서 무주 세계태권도공원 유치, LS전선 등 대기업 유치, 방폐장에 대한 도민의지 결집, 혁신도시 확정, 새만금 대법원 판결 승소 등을 통해 전북발전에 탄력을 불어 넣었다. 특히 새만금 사업의 경우 ‘강만금’이라 불리는 그의 집념이 아니었다면 오늘의 새만금이 없었을 정도로 그의 업적은 절대적이다. 하지만 지사 당선후 입당한 열린우리당과는 소위 코드가 맞지 않아 겉돌았다. 오죽했으면 “입당이후 참여정부가 도와 준 것이 없다”고 직격탄을 날렸을까. 그는 사심없는 열정과 따뜻한 인간적 풍모를 지녔으나 정치력 부족과 온정주의적 인사 스타일을 벗지 못했다.
끝으로 취임을 앞둔 김완주 당선자. 그는 오랜 관료생활 동안 지사를 꿈꾸었다. 그리고 이번에 그렇게 갈망하던 꿈을 이루었다. 그의 시대는 패러다임의 대전환을 요구받고 있다. 지금까지가 양(量)의 시대였다면 이제 질(質)의 시대, 그리고 다양성의 시대로 진입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빠른 판단력과 이슈 선점 능력이 탁월하다. 일에 대한 열정도 대단하다. 하지만 내용(contents) 보다 전달(delivery)에 능하다는 평도 따른다. 그는 전북을 ‘총체적 위기’라고 규정하고 “전국 16개 시도중 4강에 올려 놓겠다”고 공언했다. 4년후 그에 대한 평가가 궁금하다.
/조상진(전북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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