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월간문학」을 통해 문단에 데뷔한 수필가 김학씨(63·국제펜클럽 한국본부 부이사장). 등단도 하기 전 처녀 수필집 「밤의 여로」(1978)를 펴냈던 그는 “그 때는 문학이 무엇인지, 문단이 어떤 곳이지 잘 알지 못한 때여서 마냥 즐겁기만 했다”고 회상했다.
아홉번째 수필집 「실수를 딛고 살아온 세월」(대한문학)을 내놓고 나서야 그는 조금은 두렵고 부끄럽다고 말했다. 그의 표현대로 ‘철이 든 까닭’일 것이다.
“내가 낳은 2남 1녀는 ‘육체적인 자식’이고, 내가 쓴 수필들은 ‘정신적인 자식’입니다. 잘났던 못났던 육체적인 자식들을 우리집 족보에 올렸듯, 내가 낳은 수필들도 때가 되면 한 권의 수필집으로 묶어 문학의 족보에 올려야죠.”
2∼3년 터울로 정신적인 자식들을 낳고 있는 그는 “분에 넘칠 정도로 수필의 사랑을 많이 받은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전북에서 수필의 자리를 찾게 해 준 이가 바로 그다. 전북 수필을 키워야 한다는 생각에 1979년 ‘전북수필문학회’를 창립하고 동인지 「전북수필」과 전북수필문학상을 만들었다.
지금도 전북대 평생교육원에서 수필을 가르치고 있는 그에게 수필이 받은 사랑이 더 클지도 모른다.
“수필은 정(情)의 문학입니다. 글에서 마음이 느껴져야죠. 소재가 생물이든 무생물이든, 쓰는 사람은 소재에 정을 주고 입장을 바꿔 생각해 봐야 합니다.”
그는 “젊어서는 느끼지 못한 것들도 전부 글의 소재였다”며 “수필을 쓰는 데 있어 나이가 든다는 것이 결코 나쁜 일만은 아니다”고 말했다.
이번 수필집에는 2003년 회갑기념으로 출간한 「아름다운 도전」 이후 쓴 것들을 실었다. 가족과 고향 이야기에서 사회와 나라 이야기로, 그의 파장은 잔잔하지만 힘있게 퍼져나간다.
‘지역문학이 활성화되어야 한국문학의 르네상스는 이루어진다’ ‘재미가 수필의 유일한 양념은 아니다’ ‘전북은 한국수필문학의 메카’ 등 가벼운 수필이론도 흥미롭다.
“내가 쓴 수필은 모두가 나의 분신들이고, 내가 이 세상에 남기고 갈 소중한 흔적들입니다. 어쩌다 수필과 사랑을 나누게 됐는지 꿈만 같지만, 수필이 없었다면 내 인생의 후반부는 생산적 삶이 아니었을 테니 얼마나 쓸쓸했겠습니까?”
수필은 자기를 찾는 문학이라는 김씨. 신부를 찾아가 고해성사를 하듯, 수필가인 그는 원고지 앞에서 고해성사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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