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암사화집」(인문사, 1939.7.5)은 호암 문일평(文一平, 1888∼1939) 작고후 65일에 출간되었다. 10.5×14.5㎝, 견본(絹本) 표지, 227면의 아담한 책이다. 발행인은 평론가 최재서(崔載瑞)로 되어있고, 발문은 이원조(李源朝)가 썼다. 이원조 역시 당시 활발한 평론가였다.
책은 3부로 엮어져 있다. ‘인물편(人物篇)’ ‘고적편(古蹟篇)’ ‘사실편(史實篇)’으로 12편의 사화를 수록하였다. 맨뒤 ‘발(跋)’의 앞에 ‘저자약력’(조선일보사 조사부)이 들어있다. 이에 의하면, 호암은 만년 7년간 조선일보의 편집고문이었다.
나는 때로 동명성왕(東明聖王)·혜초(慧超)·대각국사(大覺國師)·율곡(李珥)·완당(金正喜) 등 역사적 인물이 그리울때면 먼저 이 책부터 챙기게 된다.
‘유교에 퇴계, 율곡이 있는 것이 마치 불교에 원효, 의상이 있는 것과 같다./율곡은 학술과 정치를 결합하였고, 퇴계는 학술과 정치를 분리하였었다./입조행도(立朝行道)를 꾀하던 율곡도 학자의 일전형(一典型)이요, 재야강학(在野講學)을 힘쓰던 퇴계도 학자의 일전형이다.’
‘추사체라는 신경지’를 개척한 완당은 ‘그 고결한 품격과 공평한 견식이 길이 후세의 사표’로 경앙을 받을 것이다.
‘범안에는 기괴(奇怪)하게 보일지 모르나, 일점일획(一點一劃)이 모두 내력없는 것이 없고 규모가 엄정함은 선생의 천재로도 절대한 노력의 결과인 것을 알아야 한다.’
나는 이 책을 대할 때면, 우리 역사·인물·문화·학술·예술·국토·유적에 대한 긍지를 되챙기게 된다. 이 책을 개제(改題)한 「조선사화」(청구사, 1945.11.18)를 가지고 있는 것 또한 기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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