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탄(月灘) 박종화(朴鍾和, 1901-1981)의 「청태집」(영창서관, 1943. 재판)을 구입한 것은 ‘1952년 8월29일 전주에서’였다. 46판 294면의 양장본이다. 제자는 저자 자신이 썼고, 표지장정은 행인(杏仁, 李承萬)이 맡아 한 것이다.
시인·소설가로만 알아온 월탄에게 이러한 수필집도 있었던가, 신천지를 발견한 느낌이었다. 이 책에는 자서(自序)외에 52편의 수필이 수록되어 있다.
‘내가 뜻을 문필에 둔지 20여년, 마음 내킬때마다 끼적거려 흩으려뜨렸던 초라한 만문집(漫文集)이다.’ 자서 첫 줄의 겸사다. 그러나 ‘초라한 만문집’이 아니다. 매란국죽 사군자와도 같은 품(品) 높은 수필집이다. 편편을 다시 읽자면 처음 느끼지 못했던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문지(文氣)·문덕(文德)·문풍(文風)·문치(文致)란 이런 글들을 두고의 말들이 아닌가도 싶다.
나의 스승 가람(李秉岐)과 시조에 대한 말씀도 볼 수 있다. ‘매화옥서재를 춘하추동 두드리면 마치 난초의 전람회다. 대소·원각(圓角) 무수한 화분에선 황자(黃紫)의 난화가 청초한 향기를 배앝아 그야말로 만실청향이다. 가람은 올연히 난초 속에 앉아 호방한 웃음을 웃으며 손을 맞는 것이다.’(‘조수루산고’에서)
‘신시(新詩)는 마치 서양화 같고 시조는 흡사 동양화 같다./시조는 정금미옥(精金美玉) 같은 시형이다/시조에 대한 훼예포폄(毁譽褒貶)은 돌아보지 말고 한결같이 신예술의 길로 진전해 나아가라.’(‘시조는 어디로 가나’에서)
나는 졸저 「수필ABC」(형설출판사, 1965)에서 월탄의 ‘수근찬(水芹讚)’을 1930년대의 좋은 수필로 인용한 바 있다. 지금 읽어도 봄미나리의 향미(香味)가 어려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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