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장 한 면을 가득 채운 도화지는 나를 비워내는 공간이다. 관람객들은 자신의 욕망을, 소망을 도화지에 쏟아내고 돌아선다. 전시장안 커다란 방석은 잠깐의 쉼을 위한 장치다. ‘세일’의 전시장은 늘 이랬다. 허위 관습을 버리고 문턱을 낮춘 후 대중에게 먼저 말을 건넸다.
젊은 작가들의 모임 ‘세일(SALE)’의 작업은 늘 유쾌하다. 창립전 ‘날 것을 파는 정육점’으로부터 ‘창고 대 방출’ ‘오늘 소 잡는 날’ ‘땡처분’ 등은 자신들의 작품을 솔직담백·가감없이 팔아보겠다고 마련했던 전시다. 1994년, 대학문을 나와 사회초년생으로, 지방에서, 전업미술가로 살아남기가 어려움을 절감했던 젊은 작가들이 미술에 대한, 특히 현대미술에 대한 사회의 편견을 깨보자는 취지로 의기투합한게 단초가 됐다. 이정웅 한병기 박민 김성중은 작업실 이웃사촌으로, 이일순 황의성 김삼곤은 뜻이 맞다는 이유로 세일의 동지가 됐다. 처음 마련한 전시, ‘날 것을 파는 정육점’은 미술품은 고가라는 인식의 틀을 깨기 위한 자리였다. “당시 노동자 일당에 작업일수를 곱하고 재료비를 더해 작품 가격을 매겼어요. 굳이 팔겠다는 의지보다 서민들 눈높이에 미술을 맞춰보고 싶었습니다.”
작업실 작품을 몽땅 내놓은 ‘창고 대 방출’이나, 근작(싱싱한 작품)들로 꾸린 ‘오늘 소 잡는 날’, ‘땡처분’ 등은 미술에 대중적인 경제관념을 도입했던 작업들이다.
사회적 이슈도 세일에겐 놓칠수 없는 주제였다. 6.15공동선언이 발표됐던 2000년에는 ‘반갑습네다-土ㅇ일’을 주제로 작업했다. 독도망언이 이슈가 됐던 2001년에는 ‘日本(일본)=曰犬(왈견)’이 전시주제로, 월드컵 광풍이 불었던 2002년에는 ‘Be the Reds’가 작품속으로 들어왔다. 지난해와 올해까지 이어진 ‘즐거운 치료’는 미술체험을 통해 정신적 카타르시스를 선사하기 위한 기획전으로 마련했는데, 최근 몇년새 예술체험프로그램의 급격한 양적 팽창으로 기획의도만큼 차별화하지 못했다는 자체 분석을 내렸다.
세일이 이처럼 지역 화단에서 주목받는 행보를 할 수 있었던데는 해마다 수혈되는 ‘젊은’회원 덕분이다. 출신학교를 따지지 않고, 실험적인 작업을 견지하는, ‘싹수’있는 작가를 해마다 거르지 않고 꾸준히 영입했기 때문이다. 이들 덕에 창립당시의 ‘도전’ ‘실험정신’을 지켜올 수 있었다고 한다.
“사실 젊은 작가들에게 지역 화단은 척박한 환경입니다. 세일은 주목받지 못하더라도 작업을 하겠다는, 그것도 열심히 하겠다는 정신으로 무장된 작가들이 모여 있는 것이지요. 그렇다고 기성세대나 제도권에 대한 반발이나 반항은 아닙니다. 다른 표현방식으로 관객들과 소통하는 것이지요.”
자신들의 작업과 대중과의 거리좁히기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이 곧 작가 스스로 깨어있으려는 노력이기도 하다. 유쾌한 작업을 하는 세일은 이를 “현대미술의 대중성확보”라고 표현한다.
전북대와 전주대 원광대 홍익대에서 그림공부를 한 30여명이 활동하고 있다. 25일까지 도청사 갤러리에서 열리는 열세번째 전시에는 김민자 김봉선 김용수 김정미 김준우 노지연 박준서 소정윤 송상민 유연정 이정웅 이학진 임승한 장광선 최희경 한 숙이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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