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나가는 음악학원 원장이 시골로 들어가 혼자 흙집을 짓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은 한달전 쯤이었다. 나이 마흔줄을 갓 넘어선 사람이 그것도 생업까지 밀쳐두고 시골로 들어갔다는 것도 그렇지만 일삼아 집짓는 기술자도 아닌 마당에 혼자 집짓기에 나섰다는 것에 귀가 솔깃했다. 그것도 흙집이라니.
임실군 강진면 옥정리 산막부락. 전주의 이름 꽤나 알려진 음악학원의 원장인 김승철씨(42)가 짓는 흙집은 섬진강 댐을 사이에 두고 양쪽으로 나뉘는 섬진강 물줄기를 옆으로 살짝 내려다보는 동네 어귀에 있다. 바로 앞에는 필봉이 마을을 두르고 오른쪽으로는 회문산자락이 시작되는 이 마을의 풍경은 그 자체로 그림이다.
"경치가 괜찮죠? 아마 마음이 편안해질 겁니다.”
얼굴 새까맣게 그을린 집주인 김씨는 한참동안 풍경에 취해있는 손님들을 재촉하지 않았다. 지난 가을부터 집지을 곳을 찾아다니다가 만난 이 땅은 그의 결단을 후회하지 않게한 결실이다.
"한동안은 전주 인근의 땅만 보러 다녔어요. 도시를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지만 아무래도 태어나고 성장해온 공간의 환경과 완전히 단절하기에는 망설이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나 싶어요.”
그러다가 우연히 찾게된 이 마을에 와서 '여기라면 오랫동안 꿈꾸어온 내 삶의 미래를 실현해갈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가족들은 심란하게만 보이는 이 땅을 일구겠다고 나서는 김씨의 선택을 그다지 환영하지는 않았지만 한번 두 번 드나들면서 기꺼이 한마음이 됐다.
그는 오래전부터 꿈을 갖고 있었다. 대학에서 오보에를 전공하고 역시 같은 대학에서 피아노를 전공한 아내를 만나 결혼해 두아들을 얻고 살아오는 동안 경제적으로도 별 큰 어려움 없이 안정된 환경을 갖게 되었지만 늘 마음 한구석에는 허전함이 있었다. 자연과 벗할 수 있는 시골생활에 대한 그리움이었다. 자연과 가까이에서 사는 삶에의 동경은 마흔이 되면서부터 더 이상 묻어두지 못할 정도로 삶의 목표가 되었다.
그가 자칫 '꿈'으로 끝날 수 도 있었던 삶의 목표를 실현할 수 있겠다는 확신과 용기를 갖게 된 것은 어느날 뒤적이고 있던 책속에서 혼자서도 지을 수 있는 '흙집'을 만나면서다.
"눈이 번쩍 뜨였어요. 몇날 며칠 책에 줄을 그어가며 읽었지요. 아내에게 조심스럽게 '이것 한번 배워볼까'하고 물었더니 아내가 망설이지 않고 해보라는겁니다.”
그 길로 그는 4주 코스 흙집짓기 교육을 받기 위해 짐싸들고 화순으로 들어갔다. 화순에는 미술가 출신으로 20년동안 혼자 지을 수 있는 집을 연구해 '목천흙집'이란 이름의 건축기법을 개발해낸 조영길씨가 운영하는 '흙집학교'가 있었다.
그곳에 들어가서야 김씨는 자신처럼 세상을 살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참으로 많다는 것을 알게 됐다.
"제가 43기, 15명 동기들이 공부했어요. 그동안에도 많은 사람들이 흙집 교육을 받고 나가 전국 각지에서 흙집을 짓고 살고 있죠.”
실제로 이 '목천흙집'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나아가 지은 흙집은 전국 각지에 400여채나 된다. 건축에 문외한인 사람들이 4주 정도의 교육을 받고 나가 스스로 살 집을 지어낸다는 것은 흥미도 있거니와 관심을 갖게 하는 대목이다.
작년 9월, 꼬박 한달동안 교육을 받고 10월에 집에 온 그는 곧바로 흙집을 지을 땅을 찾아나섰다. 한달여동안 뒤지고 다닌 끝에 산막부락에 자신의 꿈을 담을 땅 700평을 얻었다.
설레이는 마음으로 겨울을 났다. 음악학원 원장의 직함을 버리고 그는 철저히 시골사람이 되겠다고 마음 억었다. 지난 3월, 집짓기가 시작됐다.
"좋은 지인들이 하루쯤 마음도 몸도 편하게 쉬어갈 수 있는 집, 도시생활에 찌든 사람들을 초대해 작은 음악회도 열고 마을 어르신들과도 공동체 삶의 행복을 나눌 수 있는 집을 짓고 싶어요.” 그의 꿈이 더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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