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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영화] 여인광 감독 '아이스케키' - 시대극의 향수+잔잔한 가족애

인간이 달에 발을 디딘 1969년. 전라남도 여수에는 10살짜리 박치기대장 영래가 살고 있었다.

 

일명 ‘바가지 머리’의 헤어스타일에 까맣게 그을린 깡마른 몸집의 영래는 밀수화장품 방문판매원 엄마와 근근이 살아가지만 밝고 명랑한 성격이다. 방학날까지도 육성회비를 내지 못해 담임 선생님에게 핀잔 들을 때만 잠시 주눅이 들 뿐, “아빠가 없다”는 아이들의 놀림에는 별반 동요하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 날 죽은 줄만 알았던 아빠가 서울에 살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영래는 애써 눌러왔던 아빠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에 서울행을 결심한다. 그리고 서울행 기차 삯을 벌기 위해 엄마 몰래 아이스케키 장사에 나선다.

 

아이들 손을 꼭 잡고 즐겁게 볼 만한 영화가 등장했다. ‘제작명가’ MK픽쳐스가 만든 ‘아이스케키’는 유아적 제목으로 자칫 어른들의 관심을 피해갈 위험이 있지만, 그안을 들여다보면 어린 자녀와 부모가 함께 볼 때 재미와 여운이 배가되는 영화다.

 

2005년 ‘안녕, 형아’를 시작으로 가족 영화에도 무게를 싣겠다고 선언한 MK픽쳐스는 ‘아이스케키’를 통해 ‘안녕, 형아’보다 진일보한 솜씨를 과시했다. 무엇보다 ‘안녕, 형아’가 소아암이라는 소재로 인해 어쩔 수 없이 무겁고 처졌다면 ‘아이스케키’는 그에 비해 대단히 경쾌하고 밝다.

 

그렇다고 대책 없는 낙관주의도 아닌 것이 1969년대의 가난한 시대상과 아빠의 부재에 따른 상실감이 극의 출발점이다. 시대극이 줄 수 있는 향수와 재미에 보편적인 가족애를 섞은 영화는 남녀노소 부담 없이 볼 수 있는 괜찮은 가족영화로 탄생했다.

 

비슷한 느낌의 ‘사랑해 말순씨’(2005)에 비해 시대상 묘사나 드라마·인물의 견고함은 많이 떨어지지만 ‘사랑해 말순씨’가 아이들보다는 어른 관객에게 어필할 영화라면, ‘아이스케키’는 철저히 아이들 눈 높이에 맞추되 어른들까지 끌어안는다. 한마디로 영화의 존재 가치와 시장에서의 목표에 충실했다고 할 수 있다.

 

지긋지긋한 가난은 고아들을 양산하고, 길거리로 내몰린 아이들은 땅에 떨어진 달걀도 게걸스럽게 먹어치운다. 사카린으로 조악하게 만든 위생 불량의 막대 아이스크림, ‘아이스케키’도 아무나 사 먹을 수 없다. 자기 몸집만 한 크기의 아이스케키 통을 들고 거리로 나선 영래는 정작 아이스케키를 제대로 먹어본 적이 없다. 여기에 경찰의 눈을 피해 밀수화장품 장사를 하는 영래 엄마와 ‘빨갱이의 자식’으로 낙인 찍혀 숨 죽인 채 살아야 하는 인백 남매의 모습은 21세기를 사는 아이들에게는 SF영화를 보는 듯한 별천지의 풍경이다.

 

신예 여인광 감독은 이러한 풍광에 ‘톰 소여의 모험’과 같은 스릴 넘치는 소년적 감수성을 귀엽게 삽입했고, 아이들을 영락없이 꼼짝 못하게 하는 부모의 부재에 대한 슬픔을 그 상투성에도 불구하고 경직되지 않게 담아냈다. 덕분에 마지막 장면의 반전은 대단히 사랑스럽게 느껴진다.

 

‘안녕, 형아’로 뉴몬트리올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1995년생의 박지빈이 ‘천재 아역배우’의 면모를 또 드러냈고, 데뷔 17년 만에 영화에 데뷔한 신애라도 무리없이 스크린에 녹아들었다.

 

전체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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