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낮, 낯선 영국 신사가 한옥마을 거닐고 있었다.
오래된 한옥들. 낮은 담장, 낡은 지붕의 처마 끝마다 따뜻한 시선을 보내고 있는 그는 워릭 모리스 주한 영국대사(58)였다.
그를 전주로 이끈 것은 80여년 전 한국인과 한국의 문화를 애정 어린 눈빛으로 그려놓은 영국의 여류화가 엘리자베스 키스.
2007년 한국의 대통령 선거를 꼭 보고 싶다며 최근 임기를 1년 연장해 화제가 됐던 그가 오랜만에 복잡한 일상에서 벗어났다. 단 한명의 통역관만이 동행한 소박한 외출이었다.
“30년 전 전주에 왔었을 때, 그 때 전주는 작은 도시였어요. 시간이 흘러서인지 전주도 많이 커진 것 같아요. 하지만 서구화가 되어 이미 비슷해진 대도시들과 달리, 전주는 여전히 고요하면서도 한국적인 느낌입니다.”
5일까지 전북도립미술관에서 열린 엘리자베스 키스전 관람을 위해 전주에 온 그는 “도심 밖 아름다운 풍경 속에 도립미술관이 위치한 것이 인상적”이라고 말했다.
“엘리자베스 키스는 사실 영국보다는 미국과 일본에서 더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작품을 봤을 때 영국에서도 그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할 것 같습니다. 영국 대사로서 전북도립미술관이 영국의 작가에 관심을 가져준 것에 감사드립니다.”
농부와 과부, 아낙네와 노인에서부터 왕실공주와 정치인, 양반댁 규수에 이르기까지 키스의 시선은 한국의 인물들을 과장이나 폄하 없이 간결하고 진솔하게 그려놓았다. 일본과 중국의 문화도 그렸지만, 그가 남긴 글은 키스가 한국에 대해 얼마나 특별한 감정을 가지고 있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게 한다.
모리스 대사는 “외국 서양화가가 한국인들의 일상생활을 그렸다는 점에서 매우 특별한 컬렉션”이라며 “영국과 관련된 문화적 교류들이 좀더 많아지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키스가 세상을 떠난 후, 한국에서는 처음 열린 이번 전시는 이후 국립현대미술관과 경남도립미술관으로 이어진다. 2만여명이 다녀간 도립미술관의 엘리자베스 키스전은 지방 미술관이 작가를 발굴하고 조명해 주목을 받았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있다.
키스의 작품을 감상하고, 모리스 대사는 전주에서 한국을 다시한번 느꼈다고 했다.
“한옥은 오래 됐으면서도 참 아름다운 건물입니다. 경기전과 전동성당 등 한옥마을을 둘러보며 역사와 전통이 잘 보존돼 있는 곳이라는 느낌을 받았어요.”
전주시가 추진하고 있는 전주전통문화중심도시에 대해 설명하자, 그는 “정책 뿐만 아니라 그 안에 살아가는 사람들이 매우 중요할 것”이라며 “무엇보다 지방 자치단체가 전통적인 것에 관심을 가지고 생활 속에 전통을 유지해 나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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