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스락바스락 낙엽 뒹굴고 찬바람 불기 시작하면 신춘문예에 대한 열병을 앓곤 했다. 열병이라고 해봐야 별건 아니지만 정말 별것이 아닌 것만도 아니었으리라.
열병을 앓기 전에 우선, 맨 먼저 하는 일은 누구를 막론하고 아무도 만나지 않는 것과 더불어 스스로 골방에 갇히는 일이었다.
뜨거운 여름 내내 어찌하여 습작은 안하고 빈둥거리기만 했을까 하는 후회를 뒤로한 채 앉은뱅이책상에 붙어 앉아 코를 박고 끙끙대는 일은 짧고도 지겨운 즐거움이었다. 졸음은 껌뻑껌뻑 몰려오고 길어야 할 밤은 짧기만 하여 동은 일찍도 터 올랐지만 가위로 오려둔 신춘문예 공고 문구를 꺼내어 쳐다보기라도 할라치면 졸린 눈은 언제 그랬냐는 듯 금시 말똥말똥 해져왔고 시들시들 시들어가던 가슴은 금시 뜨거워졌다.
방문이며 책장 귀퉁이, 창틀, 벽 할 것 없이 습작 시들을 촘촘히 붙여 놓고는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서 보고 다른 습작을 퇴고하다가도 보고 화장실 오갈 때도 보았다.
골방에 처박혀서 신춘문예에 보낼 시를 정리하고 있을 때 셋째누나가 집에 온 적이 있다. 평소 다정다감했던 누나는 나에게 버럭 화를 내면서 '저놈의 책들하고 원고뭉치를 버리면 정신 차리고 제대로 된 돈벌이를 할 것'이라며 금방이라도 내 방을 까 엎을 태세였다. 누나가 가고난 뒤에 나는 방에 찬밥처럼 담겨져서 참 많이도 서럽게 울었다. 무릎 사이에 얼굴을 묻고 번지는 눈물을 닦아내면서 더 이상 시집도 읽지 말아야 했고 모아둔 습작시도 태워버려야 했지만, 나는 또 어쩌자고 앉은뱅이책상에 붙어 앉아 두 눈을 말똥거리기 시작했다.
몇 번이고 고쳐 쓴 원고가 더 이상 쳐다보기도 싫어질 때쯤 나는 습작 원고를 추려서 신춘문예에 응모했다. 누구나 그러했겠지만 우편물 봉투 귀퉁이가 터지지는 않을까, 혹은 우편물이 비에 젖어 주소가 번지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을 하면서 우체국으로 향했다. 이때쯤이면 입술은 터지고 혓바늘은 돋고 그렇지 않아도 살이 오르지 않던 몸은 더욱 말라깽이가 되어있었다는 것은 두말 할 나위도 없을 것이다.
아버지가 흙으로 돌아가신지 딱 일년 되던 날 아침에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고 나는 더 이상 신춘문예에 대한 열병을 앓지 않아도 되었다.
* 박성우
· 1971년 전북 정읍출생
· 2000년 중앙일보 시 '거미'
· 2006년 한국일보 동시 '미역'
· 전, 전북작가회의 사무국장, 전주대 강사
. 현, 전주전통문화중심도시추진단 홍보팀장
원광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강사
전주대학교 평생교육원 '시 쓰기 수업' 전담교수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