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의 하산(下山) 길이 고단해 보인다. 겨울 날씨처럼 스산하다. 여야 할 것 없이 날 선 공격이요, 인기도 10%이하로 바닥을 긴다. 여당에선 “당을 떠나라”고 하고, 시중엔 임기후 대선자금 문제며 형 건평씨에 대한 수사 얘기마저 나오고 있다. 술자리에선 온통 욕설과 비난 뿐이다. 요즘은 그 마저도 지친 탓인지 “노무현의 노 자(字)도 꺼내지 마라”고 할 정도다. 하나같이 부뚜막의 반찬 훔쳐먹은 고양이 잡뜨리듯 몰아 세운다. 그러다 보니 스스로 ‘하야(下野)’를 운운할 지경이다. 지금 그를 두둔하면 ‘미친 놈’소릴 들을 게 뻔하다.
하지만 노 대통령이 정말 그렇게 잘못한 것인가. 잘한 것은 하나도 없고 모두 실패 뿐인가. 반드시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돌이켜 보자. 그는 소수, 즉 비주류로서 집권에 성공했다. 메인 스트림을 형성해 온 보수 기득권층에겐 껄끄러웠을 것이다. 아니, 그를 대통령으로 인정하는 것 자체가 어려웠을 것이다. 그것이 그의 잦은 말 실수와 일부 실정(失政)이 겹치면서 보수언론과 한나라당의 좋은 먹잇감이 되었다.
그렇지만 그는 역대정권이 하지 못한 몇가지 큰 일을 해냈다. 적어도, 권위주의 불식과 정경유착·권언유착 고리 근절에 기여했다. 깨끗한 정치와 지역균형발전 역시 그러하다.
이 가운데 지방의 입장에서 보면 ‘국가 균형발전 정책’은 획기적이다. 지난 50여년 동안 피폐한 국가경제를 일으켜 세우는 과정에서 수도권은 비만에, 지방은 극심한 영양실조에 허덕여야 했다. 지방은 산업화 과정에서 돈과 권한, 인재, 정보 등에서 블랙홀 같은 서울에 모든 것을 내주었다. 자식에게 모든 것을 바친, 늙고 지친 촌로(村老)의 모습 그대로였다.
이 정책은 지방분권과 행정중심복합도시, 혁신도시 등을 3대 축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출발부터 거센 저항에 부딪쳤다. 행복도시 이전과 관련, 서울의 집값이 폭락한다고 난리를 떨었다. 수도권 공공기관 175개를 전국 10개 도시에 나눠 건설하는 혁신도시도 마찬가지다. 지방 스스로 일어 설 수 있게 내부역량을 기르는 이 정책은 아직 반석에 오르지 못하고 있다. 노무현 정부를 폄하하는 어떤 언사에도 이 정책만은 높이 평가받아 마땅하다. 다음 정부도 물론 지속시켜야 할 것이다.
그렇다고 부동산정책이나 양극화의 심화까지 두둔할 생각은 없다. 특히 ‘부동산 광풍’은 입이 열개라고 책임을 면할 수 없을 것이다.
또 여당이나 야당은 노 대통령을 비난할 자격이 있는지 의심스럽다. 발목잡기와 반사적 이익을 챙겨온 한나라당은 야당이라 그렇다 치자. 여당인 열린 우리당은 뭐했는가. 탄핵 덕분에 거대 여당이 된후 정책제시나 조정력은 상실한 채 망둥이처럼 톡톡 튀기만 하지 않았는지. 어쨌든 이제 임기 1년여를 남기고 있다. 내년 12월 대선을 생각하면 실질적 임기는 다 된 셈이다.
옛 말에 ‘천인소지무병이사(千人所指無病而死)’라 했다. 천 사람이 손가락질 하면 병 없이도 죽는다는 말이다. 반면 영국 속담에는 ‘바보를 칭찬해 보라. 그러면 훌륭하게 쓸 수 있다’고 했다. 아무리 잘 해도 못한다고 헐뜯으면 정말 못하는 법이다. 그의 하산길을 도와야 할 것이다. 그것이 곧 민주주의의 진보가 아닐까.
/조상진(전북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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