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일반기사

[작가가 만난 작가] 개명(改名) - 라대곤

과연 오뉴월 염천이다. 머리가죽이 벗겨질 듯 뜨겁게 타오르는 뙤약볕에다가 후덥지근한 바람마저 기분을 잡치게 한다.

 

감기에 걸린 듯 덜컹거리면서 돌아가는 선풍기 바람이 먼지만 몰아다 주는지 목까지 칼칼하다. 벽시계는 벌써 열시를 가르키고 있다. 대신은 잠이 더 올 것 같지 않아 뭉기적거리면서 일어나 앉았다. 실업자로 지낸지 벌써 3년째다. 그 동안 여기저기 이력서도 내보고 이것저것 장사도 해 보았지만 되는 일이 하나도 없었다.

 

윗목에 개다리 밥상이 보인다, 마누라가 장사를 나가면서 차려놓은 밥상이다. 파리 때가 앵앵거리더니 콩자반 위로 내려앉아 두발을 싹싹 비벼댄다. 밥맛이 싹 가셔버린다. 점퍼를 들고 집을 나오고 말았다.

 

어디로 갈까? 망설여진다. 주머니에 만 원짜리 한 장이 잡힌다. 담배를 한 갑 살까?하고 고개를 들다보니 담배가게 대신 엉뚱하게 철학관 간판이 보인다. 이놈의 팔자가 왜 이러나? 사주나 한번 볼까? 망설이다가 찌그러진 파란 대문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름이 너무 커!”

 

생년생시를 묻던 도사가 때 뭍은 한복에 팔짱을 끼고 조는 듯 실눈을 감더니 내뱉은 첫마디다.

 

“이름이 좋지 않다 그 말씀이요?”

 

“쉽게 알아들어서 좋구먼! 머리통만 크고 몸은 작은 형상이지. 다시 말해서 시작은 있고 끝이 없는 용두사미다 그 말이야.”

 

제법 문자를 쓰는 것이 아주 엉터리는 아닌 것 같다. 귀가 솔깃하다. 무릎걸음으로 다가 앉았다.

 

“개명을 하려면 얼마요?”

 

“좋은 이름을 얻으려면 돈 계산은 하지 않는 법이야.”

 

“기본 금액이 얼마냐 그 말이요.”

 

“실직하고 돈도 없는 모양인데 오십 만원만 내.”

 

실업자 인걸 어찌 알았을까? 과연 도사다. 도사는 크게 인심이나 쓰듯 생색을 낸다. 주머니에 그만한 돈이 있을 리가 없다. 오십 만원이면 몇 달치 용돈이다.

 

퉤!

 

“미친 자식, 대신이가 어떤 이름인데, 더구나 그렇게 큰 돈이 있으면 끼 있는 여자 찾아 새장가라도 가겠다.”

 

침을 뱉으면서 나오고 말았지만 마음 한 켠이 찜찜하다. 정말 이름 때문일까? 崔大信이라는 이름은 할아버지가 장래 큰 사람이 되라고 큰 대자 믿을 신을 넣어서 특별히 지어준 이름이다. 할아버지는 마을에서 서당을 하던 한학자였으니 손자 이름을 잘못 지었을 리가 없다.

 

‘더러운 새끼.’

 

생각할수록 복채로 놓고 나온 만원까지 아까워진다. 이제 무일푼이다. 괜히 사주팔자 본다고 하루 용돈을 몽땅 버리고 만 것이다. 공복감이 밀려 온다. 할 수 없이 집으로 돌아가 시어터진 김치조각에 찬 밥 덩어리로 배를 채워야 할 것 같다.

 

한데 그 날밤부터 이상한 일이 생겼다. 헛소리 하는 도사 말을 무시하려고 하면 할수록 잠은 천리나 달아나고 최대신이라는 이름 석 자가 자꾸 귓가를 맴돈다. 개명을 해서 직장이 얻어지는 것이라면 당연히 바꿔야 하는 것이 아닌가? 뭉기적거리다 결국 잠을 설치면서 얻은 결론은 어떻게든 이름을 바꾸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오십 만원이나 들고 다시 도사에게 찾아 갈 수는 없는 일이다. 무슨 수가 없을까? ‘대신’이라는 이름을 아무렇게나 그냥 바꾸어 주면 되는 것이 아닌가? 옥편을 찾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한문공부라도 좀 해둘 걸 후회가 밀려온다.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 할아버지에게 천자문을 배울 기회가 있었다. 하지만 大信이는 천자문 외우기가 정말 싫었다. 갖은 핑계로 할아버지 눈을 속이고 공부를 하지 않았다. 꾀부리며 놀기 좋아하는 大信이를 어쩌지 못한 할아버지도 결국 천자문 가르치기를 포기하고 말았다. 정상적인 한문 공부를 할 기회를 놓치고 만 것이다. 그때 배운 것은 골목길을 뛰어다니며 노래처럼 외우던 천자문 앞장에 있는 하늘 천 따지 하는 서너 줄이 전부였다.

 

철이 들어 모자란 한문 실력에 후회를 해 보아도 이미 때는 늦어 있었다. 더듬더듬 읽고 쓰는 한문은 등 너머로 배워 읽을 줄은 알지만 뜻을 제대로 모르니 수박 겉 핥기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보니 이태백이 시를 읽는 다는 것은 어불성설이고 거실에 걸려있는 붓글씨 족자 한 폭을 제대로 해석할 수가 없다. 답답하기도 하고 남이 알까봐 창피했지만 남에게 말하지 않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며 살았다. 한문 모른다고 눈치 하는 사람도 없었다. 애경사 봉투쯤은 획수가 맞지 않아도 그냥 휘갈겨 쓰면 되는 것이고 신문에서 모르는 글자야 앞뒤 맞추어서 적당히 해석하고 읽으면 되는 일이었다.

 

그런 실력으로 개명을 한다는 것은 말도 아니다. 두 눈을 디룩거리던 대신이가 갑자기 무릎을 쳤다. 잔머리하면 대신이다. 결국 간단하게 개명할 방법을 찾아 낸 것이다.

 

이름이 너무 쎄다고? 그렇다면 큰 대 <大> 자 한 자만 바꾸면 되는 것이 아닌가? 太信으로 개명을 하자.

 

하하하……

 

이렇게 쉬운 걸 갖고 괜한 고민을 했구나. 자신이 생각해도 대단한 발견이었다. 아주 완벽하게 주민등록까지 바꿔버리자. 마침 주민등록증의 접착면이 떨어져 한쪽이 너덜거린다. 볼펜을 꺼냈다. 가랑이에 점 하나만 찍으면 간단히 끝나는 일이다. 볼펜을 들고 온 신경을 기울려 大자 가랑이 속을 겨냥하고 점을 찍었다.

 

아뿔싸,

 

팔목에 너무 힘을 주고 긴장을 한 탓에 가랑이 속에 들어가야 할 점이 머리 쪽에 잘못 찍히고 말았다. 太자가 아니라 犬자가 되고 만 것이다.

 

당황해서 어찌할까 망설였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그렇다고 주민등록증을 없앨 수도 없는 일이다. 까짓 것 쓸 때만 太자로 쓰면 되는 일이 아닌가, 누가 알리도 없으니 그냥 주머니에 넣고 다녔다.

 

내 주민등록증을 내 마음대로 고쳤는데 누가 뭐라 하는 사람도 없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 준 적이 없는데 문제 될 건 또 뭔가? 돈을 들지 않고 개명을 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쓴웃음이 나온다.

 

한데 이상한 일이 생겼다. 개명 덕분인지 그렇게도 어렵던 취직이 다시된 것이다. 마누라는 뛸 듯이 기뻐했다. 마누라에게 개명비로 십만 원을 받아 챙겼다. 마음 같아서는 이십만 원이라고 하고 싶었지만 양심상 차마 그럴 수가 없었다. 눈치 없는 마누라는 개명 비를 내놓고도 싱글벙글했다. 바보같은 마누라 돈으로 삼겹살 안주로 소주까지 근사하게 취하고 보니 새삼스럽게 세상 살맛이 난다.

 

헌데 문제는 엉뚱한 곳에서 생기고 말았다. 그 일을 까맣게 잊고 있을 때 교통사고로 경찰서에서 참고인 조사를 받게 되었다. 성명 주소를 묻는 형사에게 아무 생각 없이 주민등록증을 내놓았다.

 

“최 견신이라……”

 

주민등록증을 유심히 보던 형사가 중얼거리듯 웅얼거렸다.

 

“아니요. 태신이가 맞습니다.”

 

한문을 제대로 읽지 못하는 형사가 웃긴다. 그냥 넘어갈 수가 없어서 비웃듯 큰소리로 정정 해 주었다.

 

“뭐요? 이게 개 犬자지 太자요?”

 

더듬거리는 형사 모습을 보면서 大信이는 박장대소를 하고 말았다. 듣고 보니 형사가 제법 한문을 아는 위인이다.

 

“당신 왜 웃는 거요?”

 

형사가 화난 얼굴로 노려보았다.

 

“그건 말이요. 내가 볼펜으로 점을 잘못 찍은 거다 그 말이요. 내가 옥편을 보고 내 이름을 개명을 했다 그 말이요.”

 

대신이가 웃음을 참으면서 아무 생각 없이 사실대로 말했다. 어이없다는 얼굴로 쳐다보던 형사가 이번에는 정색을 하고 다시 노려보더니 갑자기 책상을 쾅 하고 내려쳤다.

 

“당신 오늘 집에 갈 생각하지마!”

 

“뭐요?”

 

“들어올 때는 참고인이었지만 지금부터는 피의자다.”

 

“여보시요, 무슨 소리를 하는 겁니까?”

 

대신이는 말도 되지 않는 소리를 지껄이는 형사를 지긋히 쳐다보면서 목에 힘을 주면서 점잖게 말했다.

 

“이봐, 당신은 공문서 위조범이야!”

 

순간 大信이는 온몸이 사시나무 떨리듯 흔들려 오고 있었다. 갑자기 말투까지 바꾸어버린 형사가 지옥사자처럼 무서워지고 있었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고 했던가? 천자문 한 권 제대로 외우지 못한 주제에 성명철학까지 하겠다고 나선 것이 화를 불러오고 만 것이다.

 

“유식한 놈아, 밑에다 찍었던 위에다 찍었던 점을 잘못 찍은 너는 이제부터 믿을 건 똥개 밖에 없다는 것이나 알고 나불대거라.”

 

낄낄대는 형사의 비웃음이 조사실 방안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작가약력]

 

군산에서 태어나 김제에서 학교를 마쳤다. 수필집과 소설책이 여러권이다. 수필집「한번만이라도」「물안개속으로」「취해서 50년」「황홀한 유혹」과 소설「악연의 세월」「굴레」「선물」「아름다운 이별」「망둥어」등이 있다.

 

전북문학상, 백양촌문학상, 채만식문학상을 수상했다. 한국소설가협회 중앙위원으로도 활동중이다. 현재 (주)동영산업 대표.

 

전북일보
다른기사보기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0/ 100
최신뉴스

사건·사고체험학습 다녀오던 전주 초등학생들, 버스 화재로 대피…인명피해 없어

무주무주반딧불농특산물, 베트남서 러브콜 쇄도

완주"완주군 주민 주도 관광활성 통했다"

김제김제 폐양조장 로컬재생 프로젝트 '눈길'

법원·검찰담배 피우다 불을 내 이웃주민 숨지게 한 60대 '금고 1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