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일반기사

근대신화 속 민족주의 뛰어넘기

비교민속학회 학술대회서 조명

신화가 흔한 옛날 이야기와 구별되는 지위에 오른 것은 근대민족국가 성립 이후부터다.

 

자민족과 타민족, 자국과 타국, 우리 땅과 남의 땅을 구별하면서부터 신화는 남과 나를 구별하는 태초의 이야기로 격상됐으며 그 속에는 구별 뿐만 아니라 민족주의적 우월의식도 자리잡았다.

 

메이지 유신 당시 일본은 근대화의 구심점으로 허울 뿐인 '천황의 신화'를 되살렸으며 나치 독일은 '게르만 우월주의'라는 신화를 조작했다.

 

한국 신화 역시 국권 침탈기 민족의 단결을 위해 재조명됐다는 점에서 우월의식은 아닐지라도 민족주의 색체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1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비교민속학회가 문화관광부의 후원으로 개최한 학술대회 '한국신화의 정체성을 밝힌다'에서는 신화를 통해 한민족의 정체성과 뿌리를 확인하면서도 한국신화에 담긴 민족주의를 털어내기 위한 논의가 이뤄졌다.

 

조동일 계명대 석좌교수는 '세계 속의 한국신화,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라는 발표를 통해 신화를 원시신화, 고대신화, 근대신화로 구분해 연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원시서사시와 같은 원시신화와 그리스 신화나 단군신화 같은 고대신화, 근대 민족국가 성립기에 재조작된 근대신화는 각자 성격이 다르다는 것.

 

자국의 우월성을 강조하기 위한 강대국의 신화는 물론 국권침탈기에 재구성된 단군신화를 비롯해 터키나 태국 등 제국주의 피해국의 근대신화에도 배타적 성격이 강하게 묻어있다는 주장이다.

 

조 교수는 "원시신화와 고대신화를 함께 다루면서 신화의 본질과 역사에 대한 다면적이고 총괄적인 연구에 힘쓰는 것은 바람직한 연구지만 근대신화는 조작된 신화임을 분명하게 해서 비판의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더 나아가 "고대신화 연구에 근대신화를 옹호하려는 의도가 개입되는 것을 경계하고 배제해야 한다"며 "그릇된 신화에 대한 비판을 신화학의 과제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영대 인하대 교수 역시 '민족정체성 확립에 이바지한 건국 신화의 기능'이라는 주제의 발표를 통해 대한제국 말기 일본의 침략에 대항하기 위해 단군의 중요성이 부각된 현상을 조명했다.

 

서 교수의 발표에 따르면 조선시대 이전에도 단군을 존중하기는 했으나 단군이 본격적인 민족의 시조로 부각된 것은 을사늑약을 전후한 시기다.

 

국권침탈의 위기가 눈 앞에 닥쳐오자 민족의 단결을 위해 한민족은 모두 단군의 자손이라는 논리가 등장했으며 신문은 연도 표기란에 단기(檀紀)를 올리기 시작했다.

 

단군의 중요성이 강조되다보니 일부 친일 인사조차 '단군과 일본의 아마테라스 오마카미(天照大神.일본 신화의 최고신)는 한 형제로 둘을 합사해 모셔야 한다'는 타협안을 내놓을 정도가 됐다.

 

서 교수는 "민족적 역량의 결집을 위해 민족의식의 확립과 애국심 고취가 필요했다. 나아가 민족의식의 확립을 위해서는 민족정체성의 확인이 필요했으니, 이 시기에 단군의 존재가 강조된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였다"라고 주장했다.

 

한편 이날 학술대회에서는 '동북아신화 속에서 본 한국신화의 정체성(서대석.서울대)', '잃어버린 신화를 찾아서(정재서.이화여대)', '일본 신화 속에 뿌리내린 한국신화의 세계(노성환.울산대)' 등 신화를 통해 한민족의 정체성을 되짚은 학문적 성과들도 함께 발표됐다.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0/ 100
최신뉴스

정부尹대통령, 6시간만에 계엄 해제 선언…"계엄군 철수"

정부尹대통령 "국무회의 통해 계엄 해제할 것"

국회·정당우의장 "국회가 최후의 보루임을 확인…헌정질서 지켜낼 것"

국회·정당추경호 "일련의 사태 유감…계엄선포, 뉴스 보고 알았다"

국회·정당비상계엄 선포→계엄군 포고령→국회 해제요구…긴박했던 155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