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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떠나요] ⑪진안 운교마을-③

매사냥 강도높은 훈련

털이꾼들이 꿩을 날려주면 봉받이는 즉각 매를 내보며 "애기야~"하고 외친다. 날아간 매는 곧 논둑 풀섶에서 꿩을 낚아 논가운데로 끌고 나와 털을 뜯기 시작한다. ([email protected])

산마루에 매장(매그물)을 쳐서 받아온 매는 사냥 훈련에 들어간다. 그러나 곧바로 어떤 형식의 훈련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일단은 별 대접을 하지 않은 채(푸대접을 한다고 해야 맞다) 사람이 지나다니는 헛간이나 사랑방에 처박아둔다. 매가 쏴다니던 자연과 저절로 단절되어 사람과 익숙해 지도록 하는 것이다. 막 받아온 매는 야생성이 강해서 사람이 억지로 길들이려고 애를 써도 말을 듣지 않는다. 밥을 줘도 전혀 받아먹으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매의 심정을 거슬리게 해서 반항심만 높여놓게 된다.

 

한 일주일 탱탱 굶으며 홀로 앉아서 사람구경만 실컷 하고 있던 매는 어느 순간부터 눈빛이 달라진다. 옆에서 사람들이 자신을 무시하고 맛있는 고기를 뜯는 장면을 보면서 침을 흘리게 되고 고집부려봤자 이로울 게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모양이라. 사람과 어느 정도 낯을 익히게 되어 매가 사람을 덜 무서워하게 된 것이다. 이때 매가 영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즉 같은 매과인 황조롱이나 부엉이 같은 맹금류는 아무리 오래 굵기며 사람곁에 두어도 사람과의 낯가림을 없애지 못하고 이리저리 처박고 달아나려고 반항하다가 결국 굶거나 병들어 죽게 되는데, 매는 이윽고 사람과 친해지는 지혜가 있다.

 

매가 부드러워졌으니 이제 본격적으로 훈련에 들어간다. 그러나 훈련이라고 해야 별 것 아니고 여러 사람이 팔뚝에 매를 번갈아 앉혀가며 낯가림을 더욱 없애는 것이다. 그리고 매를 적당히 굶겨가며 먹을 것을 갈구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 다음에 마당에 나가 매 다리에 긴 줄을 달고(혹시나 달아나버릴 경우에 대비하여) 두 사람이 50미터의 간격으로 떨어져 마주보며 매의 맞은편에 있는 사람이 "후~ 후~...”하는 신호음과 먹이를 내보이며 매를 부른다. 그러면 매는 먹이를 쥐고 있는 사람의 팔뚝으로 날아와 앉으며 먹이를 뜯는다. 이것을 '줄밥주기'라고 한다. 즉 매의 훈련이란 매를 적당히 굶겨서 사람이 먹이를 주면서 부르면 고분고분하게 날아와 받아먹도록 하는 것이다. 그것이 훈련의 전부라는 사실은 실제로 매사냥 현장에 나가 사냥 과정에서 매가 어떻게 부려지는지를 보면 이해하게 된다.

 

훈련이 끝난 매는 사냥 전야를 어떻게 보내느냐가 아주 중요하다. 이 일에서 매사냥꾼의 자질이 드러난다. 매사냥은 '환장하도록 배가 고픈' 매가 꿩 그림자만 보아도 득달같이 날아가 덮치도록 하는 것이기 때문에 매사냥의 성패는 사냥 전야에 얼마나 홀짝 매를 굶기느냐에 달려있다. 매를 너무 굶기면 체력이 달려 사냥을 못하고 덜 굶기면 배가 별로 고프지 않으니 게을러진다. 노련한 사냥꾼은 사냥 전날 매에게 무명솜 한 덩어리를 뭉개어 먹인다. 돌아가실만큼 배가 고픈 매는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덥썩 받아 잡수시는데, 뱃속에 들어간 솜덩이는 매의 내장을 돌아다니며 남아있는 기름기란 기름기는 모두 흡수해 버린다. 이윽고 새벽 무렵이 되면 매는 욱~ 욱~ 구역질을 서너번 하고는 기름기먹은 솜뭉치를 토해낸다. 이것을 "티를 (밭아)낸다”고 한다. 티를 낸 매라야만 몸 안에 기름기가 없어서 더욱 허기가 지므로 눈에 '잡 것'만 보여도 잡아먹으려 기를 쓰게 된다.

 

이튿날 아침 매꾼들은 사냥매를 팔뚝에 얹은 봉받이를 선두로 매사냥에 나선다. 매사냥의 총지휘관격인 사람을 봉받이, 밭섶이나 솔포기 사이에 숨은 꿩을 몰아내 주는 대여섯 명의 사람들을 '털이꾼', 높은 곳에 올라가 매와 꿩이 날아가는 방향을 파악해 봉받이와 털이꾼들에게 알려주는 사람을 '배지기'(망보는 사람)이라고 한다.

 

매사냥에 있어서 사냥매의 역할은 물론 직접 꿩을 잡는 일이지만, 매가 꿩을 잡기까지의 과정을 살펴보면 매의 역할보다는 매사냥에 동원되는 사람들의 역할이 더 중요하다. 사냥을 지휘하는 봉받이는 매받기, 훈련, 사냥, 사냥 품평회 등 전 과정을 총괄한다. 어렸을적부터 한 평생을 시골에 살면서 매사냥 현장을 지켜온 사람이다. 털이꾼들 역시 경험이 중요하다. 어느 골짜기 어느 풀섶에 꿩이 몇 마리 숨어 있는지, 바람부는 방향을 살펴 어느 쪽으로 꿩을 날려보내야 굶은 매(힘이 왕성하지 않은)가 꿩을 쉽게 낚아채고 사람이 금방 찾을 수 있는지를 어느 정도 미리 파악할 줄 알아야 한다.

 

털이꾼들이 막대기를 두드리며 소리를 질러가다가 꿩을 날려보내면 높은 곳에서 매와 함께 기다리고 있던 봉받이가 매를 내보내며 "애기야~”하고 외친다. 매사냥이 본격 시작되었음을 널리 알리는 외침이다. 꿩을 쫓아간 매는 꿩을 잡으면 가슴털부터 뽑기 시작한다. 본능적으로 심장 등 내장을 먼저 파 먹기 위함이다. 이때 봉받이와 털이꾼들은 매로부터 꿩을 재빨리 빼앗아 내야 한다. 꿩을 잡은 현장에 너무 늦게 도달하면 배고팠던 매가 꿩을 너무 많이 뜯어먹게 되어 꿩도 버리고 그날 사냥을 망친다.

 

매는 배가 고프다는 이유 하나로 꿩사냥을 하는 것이지 사람이 예뻐서 그 짓을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배가 찬 매는 사람이 먹이를 주며 불러도 나몰라라하고 높은 나뭇가지에 앉았다가 유유히 사라져 버린다. 그러나 사람이 주는 고기맛을 잊을 수는 없는지라, 다시 배가 고파지면 인가에 들게 되는데, 이때 자칫 남의 집에 들어갔다가 '시치미떼인 매' 신세가 되는 수가 있다. 매꼬리에 다는 시치미에 하얀 거위 깃털과 매방울을 함께 다는 이유는 매에 잡힌 꿩이 퍼덕거릴 때 내는 방울소리와 하얀 깃털의 움직임을 멀리서도 쉽게 인식하여 꿩을 뜯기 시작한 매의 위치를 얼른 파악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매로부터 꿩을 앗아내는 데도 기술이 필요하다. 억센 다리로 꽉 쥐고 꿩을 뜯어먹던 매가 쉽게 먹이를 놓아주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두 다리를 뻗고 앉아서 꿩과 한 덩어리가 된 매를 무릎 사이에 올려놓고 미리 준비한 닭다리로 유인해 가면서 무릎 사이 아래로 꿩을 살살 빼낸다. 물론 매가 잡은 꿩고기를 몇 점은 매에게 먹여서 매의 성취감을 북돋아주는 일도 잊지 말아야 한다. 털만 뽑다 만 꿩을 금방 빼앗아내면 매가 "젠장, 맨날 잡아야 헛것이제이...”하면서 시무룩해진다. 사냥 의욕을 잃는 눈치를 보이는 것이다. 화가 난 매가 주위 나뭇가지로 날아가 앉아서 애태우게 하는 때가 있다. 이때 먹이를 보이며 "후~, 후~” 부르면 곧장 사람 팔뚝에 날아와 앉아서 먹이를 뜯는다. 훈련때 익힌 줄밥주기의 효과이다.

 

필자가 예전 박찬유씨의 꿩사냥을 따라갔을 때 박씨는 불과 두 세 시간만에 꿩 3마리, 산토끼 2마리를 잡는 성과를 올렸다. 재주와 경험이 많은 봉받이(매사냥꾼)가 좋은 사냥매와 경험많은 털이꾼들을 만나면 이처럼 하루에도 여러 마리의 꿩과 산토끼를 잡거나 때로는 노루도 잡는다고 한다.

 

/여행전문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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