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주까지는 가는 길은 정말 멀었다. 진안, 장수와 함께 동부산악권을 굳건히 지키고 있는 산악지대. 전라도와 경상도를 가로지르는 소백산맥의 산줄기가 사람 사는 마을마다 어미품처럼 감싸주는 곳. 그래서인지 이름난 산과 계곡이 많기도 하며, 청정한 자연환경을 활용한 축제와 여가산업이 특성화되어 있다.
최근 태권도특별법이 국회에서 통과되어 태권도공원이 조성될 것은 물론 반딧불축제, 무주리조트 등 굵직굵직한 문화관광산업이 무주의 청사진을 그려주는 듯하다. 그러나 무주의 문화예술은 상황이 심각했다. 젊은 문화예술인은 물론 순수예술의 창작자들도, 그들의 작품을 감상해 줄 향유자들도 찾아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사방천지를 둘러 싼 골짜기마다 희연 눈이 그대로 남아있다. 이번에는 둘이다. 덕유산이 저 멀리 바라다 보이는 안성면 무주도예원에서 주인장인 도예가 나운채씨(48)와 (사)민족문학작가회의 무주지부장 이병수씨(54)를 만났다. 공동체적 관점에서 볼 때 한 명은 '토박이'고, 한 명은 '뜨내기'다. 이 둘의 얘기는 서로 다르지만 결국 한 지점에서 만날 것이다.
"고향이기 때문이에요. 다른 이유는 없어요. 일찍 돌아가신 어머니에게 받지 못 한 사랑과 대학을 가지 못한 서러움을 회복하기 위해서 '나도 모르게' 책에 손을 댔다."는 말로 자신이 나고 자란 무주에서 문학을 시작한 이유를 설명했다.
지난해 처녀시집 『뜨겁게 익은 하늘을 향해 얼마나 달려가야 종점은 올까』를 세상으로 꺼내 놓은 (사)민족문학작가회의 무주지부(이하 무주작가회의) 이병수 지부장(54)은 '노장(老將)'이었다. 다소 늦은 나이에 첫 시집을 발간했지만 그의 내공은 남달랐다.
"젊어서 그림을 하다가 경제적인 사정도 그렇고, 시간도 없어서 포기했어요. 그리고 젊은 날 가정적인 이유로 방황도 많이 했고요. 습작을 시작한지 25년이 다 되었네요.”
낮에는 농사일을 하며, 밤에는 습작과 책읽기를 하는, 그야말로 진나라 때 차윤과 손강이 그랬던 것처럼 형설지공의 노력을 과감하게 퍼 붓는 사람이다.
헌데, 한 눈에 보니 필자의 '아버지뻘'은 족히 되어 보이는 그가 하는 말이, "나도 우리동네에서는 젊은 편”이란다. 아마도 마음이 젊다는 말이겠지. 이 말을 듣고 눈앞이 깜깜해졌다. 시를 쓰거나 춤을 추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하는 사람들 중에 어찌 '젊은 놈' 하나 없을까? 비록 인구 3만이 안 되는 조그마한 산골도시라고는 하지만 '문화의 시대'를 이끌어 갈 젊은 문화예술인이 없다는 말은 큰 충격이었다.
무주는 중심에서 외떨어져 있어 문화예술의 발달이 더딘 것일까? 역사적으로도 조선후기에 널리 이름을 날린 호생관 최북(1712~1789) 이후에 이렇다 할 예술가를 찾아볼 수 없었다. 근자에 김환태라는 평론가가 배출되긴 했지만 여전히 문화예술에 있어 약세를 벗어 버릴 카드는 보이지 않는다.
그나마 문학파트가 가장 낫다. 무주는 한국문인협회와 함께 전국에서 군(郡)단위로는 유일하게 지난 1993년 작가회의 지부가 조직되어 있는 지역이다. 그만큼 무주의 문인들은 문학에 대한 열정이 깊다는 말이다.
이지부장은 무주문화원 이사로도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 그래서인지 지역사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일을 하고 있었다.
무주는 동쪽으로 경상북도 김천시와 경상남도 거창군이, 서쪽으로 진안군, 남쪽으로는 장수군, 북쪽으로 충청남도 금산군과 충청북도 영동군을 비롯해 5개도 6개 시군과 인접하고 있다. 이런 역사적, 지리적 특성으로 만들어진 축제가 있단다. 바로 '삼도봉만남축제'. 일반인들에게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나름의 의미가 잘 담겨있는 축제다.
이 축제는 전라도 무주군, 충청도 영동군, 경상도 김천시가 만나는 민주지산 아래 삼도봉에서 진행된다. 세 도시의 문화원이 주관하는 축제는 "세 도시가 만나는 곳이기 때문에 역사적으로 의미도 있고, 인접한 시군과 주민과의 화합, 단결을 위해” 만들어졌다.
무주군의 문화예술의 발전을 위해서는 자치단체의 아낌없는 관심과 지원이 필요한 시점이다.
"무주가 태권도공원특별법이 통과되고, 해마다 겨울이면 무주리조트를 찾는 사람들이 전국각지에서 몰려오기 때문에 좋은 것 같지만 사실 그것은 '스포츠'지 '문화예술'은 아니에요.” 그리고 "자치단체장들은 '표'를 먹고 사는 사람들이잖아요. 그래서 문화예술과 문화예술인들을 '표'로 보고 있는 것이겠죠. 제가 군에 들어가서 소위 '바른 말'을 많이 하는데, 싫어하더라고요.”
그런데, 이지부장은 군단위의 지원이 없어도 고향에서 글을 쓰는 일에 대해 포기할 생각은 없다. 다만 "앞으로 동호인끼리의 모임이 활성화된다면 좋겠어요. 그래야 사람들도 모이고, 활동도 더 열심히 할 것 같거든요. 아무래도 좋은 사람들이 많으면 절로 모이도록 하는 게 '문화의 힘' 아닌가요?”
어찌 되었건, 무주는 문화예술판에서 '소외된 지역'이다. 물론 몇몇 문화예술들의 애향심, 열정도 중요하지만 젊은 사람들이 터를 잡고 작업할 수 있는 루트를 형성하는 일이 우선되어야 한다. 그래야 왜 둘이냐고 묻는다면 '이들 밖에 없다'는 말이 나오지 않을 테니까.
지역마다의 문화가 생명력을 가질 때, 전북문화의 르네상스는 사드락사드락 다가온다.
/정 훈 문화전문객원기자(전주역사박물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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