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삼스러워 구태여 말하기도 뭣하지만, 수필은 자판 두들겨지는 대로 두들겨 그렇고 그런 내력이나 생각의 내용을 담아내는 문학 장르로 인식하고, 아무나 기웃거리고 껄떡대는 떡판쯤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웬만하면 모두 수필가이다. 이는 이왕의 대가나 중진들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일이겠는데도 그들도 한통속으로 그 수많은 문학지와 수필지를 통해서 그 수많은 수필가를 생산하고 있다. 거기에 기왕의 시인 작가들까지 덩달아서 수필집 한 권쯤은 우리들의 코끝에 들이대니 수필가 아닌 사람이 어디 있는가. 그런 점에서 신문의 신춘문예를 거친 수필가는 제법 점잔을 빼도 될 성싶다.
이번 수필 부문에는 총 428편이 응모되어 그 중에서 10명의 30편의 작품이 예심을 통과했다. 결심에서 다시 4인의 작품이 최종에 올랐지만 결국 방민실씨의 ‘항아리’를 당선작으로 결정했다.
윤남석씨의 ‘낫 놓고 기역 자를 되짚어보며’는 ‘낫’처럼 날카로운 지적인 문장이 뛰어났으나 그 ‘낫’에 마지막 작업을 부여하지 못하고 단지 ‘조선낫’의 찬양으로 끝맺음한 것이 흠이고, 이문자씨의 ‘대청소를 하며’는 비유가 거의 시에 육박한 듯하나 ‘방’의 소통뿐만 아니라 ‘먼지’의 행방까지 그 폭을 넓혔으면 싶고, 허효남씨의 ‘노고단 가는 길’은 문장이 거칠 것이 없이 참 매끄러우나 ‘세파’와 ‘화엄’의 갈등을 ‘노고단’의 높이와 ‘하늘’의 허허로움만큼 높이고 펼쳤으면 싶다.
방민실씨의 항아리에도 불만은 있다. 문장이 왠지 번역체처럼 꺼끌꺼끌한 느낌이다. 그러나 ‘웅덩이’에서 ‘항아리’로 다시 ‘가슴’으로 또 ‘컴퓨터’로 그리하여 끝내 수필로 이어지는 연상과, 고여 있는 물의 어둠과 무거움, 비밀과 폐쇄, 꾸정거림과 맑힘, 무의식과 의식, 넘침과 해방, 그리고 나와 너의 관계 등의 갈등과 조화 등의 의미가 흔한 우물이나 거울, 그리고 나르시시즘의 이미지와 별스럽다.
수필은 단지 아무나 그 속에 내력과 생각을 버리는 쓰레기통이 아니라 시와 소설의 원료를 간직하는 ‘항아리’인 듯하다. ‘항아리’의 이미지를 늘어놓으면 시가 되고 ‘항아리’의 침전물을 꺼내면 소설이 되리라. 그러나 수필은 단지 삶의 내용물이나 시와 소설의 재료를 보관하는 ‘컴퓨터’가 아니라, 스스로 자족하며 ‘그 안에 빗물을 반쯤 받아놓고 들여다보면 내 멍울도 풀어져 푸른 하늘빛이 내 배경으로 떠오르’는 존재물로서 문학 장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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