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를 좋아하는 여자친구를 따라 어쩔 수 없이 보게 된 '지젤'. 초반에는 발끝으로 서서 우아하게 춤 추는 발레리나들의 매혹적인 모습에 입이 벌어졌지만, 그것도 잠시. 내용도 모른 채 발레리나들의 몸짓에만 빠져있기란 고역이다.
'알프레드'가 '지젤'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장면. '사랑한다'는 말 대신 두 손을 나란히 포개어 왼쪽 심장에 대고, '알프레드'가 '지젤'과 결혼할 것을 '맹세'하며 오른팔을 높이 들어 둘째 손가락과 가운데 손가락을 펴서 하늘을 가리키는 '발레 마임'을 그는 몰랐던 것이다.
발레에도 언어가 있다. 마치 수화처럼 무용수들의 동작 하나하나에 뜻이 들어있는데, '지젤'과 '백조의 호수'처럼 줄거리가 있는 고전발레에서는 발레 마임이 특히 중요하다.
2008년 오프닝작으로 '지젤'을 공연한 유니버설발레단은 공연 전 주요 관람 포인트와 함께 발레 마임을 설명하고, 공연 중에는 마임 동작에 맞춰 자막을 제공하기도 했다. 몸으로 말하는 발레에서 몇가지 몸짓 언어만 이해해도 발레 감상이 훨씬 더 재밌어지기 때문이다.
'나'는 양손의 가운데 손가락이 자기 자신을 향하게 하며, '당신'은 손을 벌려 상대를 향하게 한다. '기억하다'는 검지로 관자놀이를 만지며, '망각하다'는 양손을 내밀어 손바닥을 위로 하고 조용히 머리를 흔든다. '감사'는 가볍게 머리를 숙이고 고마운 사람을 향해 한 손을 가슴에서부터 아래로 내리며, '간청'은 깍지 낀 두 손을 모아 애원하는 몸짓을 한다.
손가락으로 입술을 만지면 '입맞춤', 손등으로 얼굴 윤곽선을 따라 원을 그리며 살짝 쓰다듬으면 '아름답다'는 뜻. '슬픔'은 손가락으로 얼굴에 떨어진 눈물 자국을 따라 선을 긋고, '울다'는 양손으로 얼굴을 가리거나 주먹을 쥐고 눈을 비빈다. '성냄'은 머리 위로 팔을 들고 팔꿈치를 앞으로 해 주먹을 떠는 시늉을 하고, '부정'은 손을 미는 몸짓으로 머리는 반대로 돌린다.
발레에 쓰이는 전문 용어는 세계적으로 프랑스어를 사용한다. 루이 14세의 전폭적인 지지로 궁중발레와 낭만발레가 꽃을 피웠기 때문. 그러나 시민혁명 이후 프랑스가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겪게 되자, 많은 무용수들이 러시아로 옮겨갔다. 오늘날 무대에 올려지는 고전 발레의 대부분이 러시아 황실이 발레에 파격적인 지원을 한 19세기 말에 제작됐다. 20세기에 들어오면서 부터는 발레 중심지가 러시아에서 미국으로 이동하고 20세기 중후반에는 세계 곳곳으로 분산되지만, 유럽 발레의 전통은 여전하다.
최근 섹시한 남자 백조를 등장시킨 매튜본의 '백조의 호수'가 여러 논란을 낳고 있지만, 루이 14세 시대에는 남성 무용수들이 중심이었다고 한다. 왕과 귀족들이 즐기는 무대에 여성이 서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생각했기 때문. '소녀'역도 여성 옷을 입은 남성들이 맡았을 정도였다.
그러나 낭만주의 시대에 이르면서 여성 무용수가 무대 전면에 등장하고 남성은 여성을 떠받치는 보조기능을 수행하게 된다. 아직도 발레하면 가냘픈 발레리나들이 먼저 떠오르지만 '보다 높은 도약, 빠른 회전'을 시도하는 남성 무용수들이 나오기 시작하면서 발레리노의 위상도 한단계 높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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