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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민 교수의 유럽 여행기] ④오스트리아 비엔나와 그라츠

전통과 현대의 아름다운 공존…800년 넘는 고풍스런 도시 풍경 속…현대적 감각 쿤스트하우스·인공섬

도시의 품격은 무엇으로 길러지고 유지되는가? 유럽의 여러 도시들을 돌아보며 계속 품고 있는 질문이다. 섣부른 답을 경계하자, 해보지만 의외로 빠른 결론이 자꾸 유혹의 손짓을 한다. '결국 사람이다!' 너무 뻔한 답이 그렇지 않아도 잔뜩 주눅 든 마음을 더욱 쪼그라들게 한다. 그들의 남다른 역사와 문화, 그리고 부럽기만 한 생태환경 등 다른 핑계에 기대보려 해도, '그것들도 결국 사람들이 일구어온 걸!' 피해갈 길이 없다.

 

그 열정과 자부심은 오스트리아 두 도시의 안내를 맡은 한국계 비엔나 시민 김정원씨에게서 먼저 확인할 수 있었다. 베토벤이 합창 교향곡을 완성하고 그 역사적인 초연을 했던 곳, 모차르트의 전설이 곳곳에 베어있고 고전음악 애호가들의 부러움과 시샘 대상인 신년음악회가 매년 열리고 있는 곳, 한때 유럽을 호령했던 합스부르크 왕가의 본거지이기도 했으며 현재는 제3의 유엔도시로서 국제도시의 명망을 꾸준히 유지해가고 있는 이곳 비엔나의 그 길고 복잡한 역사 문화에 대한 꼼꼼하면서도 그녀의 '공격적인' 설명은 방문 첫날부터 숨쉴 틈을 주지 않았다.

 

쿤스트하우스. ([email protected])

그리고 안내한 곳이 옛 귀족의 성을 개조한 빌헬미넨베르크 호텔. 화려했던 신성로마제국의 귀족행세를 좀 해보라는 배려였겠지만, 이집트의 위대한 파라오 오지만디어즈가 거대한 석상을 만들고 당당하게 외쳤다던 "위대한 자들아 와서 보라. 그리고 절망하라!"만 귀에 쟁쟁했을 뿐이다. 그러나 그 덕에 새벽 그 귀족이 경영했을 산비탈 드넓은 과수원과 그 주변의 숲을 거닐며 저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비엔나 시가지를 혼자 실컷 구경할 수 있는 호사를 누리게 된 것은 이 번 여행의 백미라 할 수 있으리라!

 

그라츠의 구시가지와 신시가지를 잇는 무어강 인공섬. ([email protected])

새벽의 '꿈'에서 깨어나 급하게 찾은 곳은 2003년 유럽의 문화수도 그라츠. 하이델베르크와 많이 닮은 이곳에서 만난 문화정책 담당 시공무원이나 도시미관 담당 시의원의 온화한 미소 뒤에도 여지없이 자기 지역에 대한 대단한 자부심과 열정이 베어 있었다. 관광 홍보를 위한 겉치레 예의나 친절이 아니었다. 그라츠를 유럽 최고의 문화생활을 향유할 수 있는 삶의 터전으로 가꾸어가고 말겠다는 결의가 하나의 생활문화로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다.

 

덕분에 아름다운 시가지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쉴로스베르크성 위 식당에서 귀족처럼 와인을 곁들인 점심을 여유롭게 즐길 수 있었다.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이 경관디자인이나 조명만이 아니라 진정 아름다움을 즐길 줄 아는 삶과 문화라는 것을 아프게 다시 확인하면서.

 

아늑한 하늘선과 붉은 지붕, 그리고 가운데로 강이 흐르는 것까지 하이델베르크와 흡사한 이 도시에, 그러나 우리들 시선을 확연 사로잡는 시설이 있으니 그것이 바로 쿤스트하우스와 무어강 인공섬 구조물이다.

 

합스부르크 왕가의 여름별장으로 이용되던 쇤부룬 성. ([email protected])

 

그라츠가 세계적인 주목을 받게 된 것은 잘 보존된 구시가지 덕분. 800년이 넘는 고풍스런 도시의 경관, 그 중간 중간에 전입가경으로 서있는 성당들이 어떤 것은 고딕 양식으로, 어떤 것은 바로크 양식으로, 또 다른 것은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각자 독특한 개성을 맘껏 뽐내고 있다. 이로 인해 199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2003년 유럽 문화수도로 지정될 수 있었던 것.

 

그러나 이곳 주민들은 이런 정도에 만족할 수 없었다. 강을 사이로 구시가지와 신시가지의 벽이 더욱 두터워지고 있는 상황에서 문화수도라는 허명에 안주할 수 없었다. 이를 연계하여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과거에 연연하지 않고 그 과거를 아름답게 보듬으며 미래를 힘차게 열어나가는 길을 함께 모색하게 된 것이다. 이런 모색의 결과가 인공섬을 포함한 다리요 기이한 모습의 미술관이다.

 

섬이자 다리이며 공연무대이기도 한 인공섬이나 미술관의 모습은 괴기스럽기조차 하다. 특히 이름까지 '외계인'인 미술관은 고풍스럽고 우아한 주변과 극단적인 대조로 그 존재감을 한껏 시위하고 있다. 수많은 논란의 대상이 되었을 이 시설로 인해 그라츠가 다시 한번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니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우리 전주만 해도 '전통문화센터'의 전통을 무시한 설계와 이름 때문에 지금도 시달리고 있는데...

 

중요한 것은 이것이 단순히 관광을 위해 기획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구ㆍ신시가지의 부자들과 서민들의 문화적 괴리, 그 벽을 허물어 바람직한 문화공동체를 마련하기 위해 고심 끝에 단행한 획기적 기획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그것이 소통의 장이 되고 문화예술의 '발전소'가 되어 그라츠 주민들의 삶의 질 향상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는 점에 우리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아무래도 비엔나에 대한 얘기는 다름 기회를 보아야 할 것 같다. 이 '꿈의 도시'에 대한 얘기를 꺼내기에 경험이 너무 일천하다. 실로 버거운 도시다. 귀족저택과 같은 곳에서 이틀을 묵었지만 정작 이 도시를 돌아본 것은 단 하루. 그것도 공식 방문이 두 곳이나 되어 그것만으로도 하루 일정이 빠듯했다.

 

다만 이런 얘기는 해야겠다. 오스트리아 센터와 시청에서 만난 관계자들 역시 "비엔나는 다르다!"는 구호처럼 남다른 자부심과 열정의 소유자라는 점. 과거의 영광에 머무르지 않고 '도나우 프로젝트' 등 도시의 거듭남을 끊임없이 추구하고 있다는 점. 오스트리아 센터, 유엔 센터 등의 컨벤션 사업을 통해 새로운 국제도시로 다시 태어나기 위해 온 지혜와 열정을 모아나가고 있다는 점. 그러면서 모차르트, 베토벤, 슈베르트, 그리고 요한 슈트라우스와 쇤베르크 등의 고전음악을 생활속에서 즐기는, 윤기 있는 고품격의 문화적 삶을 영위하고 있다는 점 등 말이다.

 

여행은 끊임없는 유혹이다. 배부른 여행은 없다. 항상 또 다른 허기를 안고 돌아오게 마련이다. 돌아오기 위해 떠난다지만 기실 떠나기 위해 돌아온다. 어느 시인의 말처럼 여행의 경험은 또 다른 경험으로의 초대요 유혹이다. 들여다보고 싶은 마음을 자극하는, 다가가면 다가 간 만큼 멀어지는, 반달문일 뿐이다. 한 권의 책을 덮으며 또 다른 책을 갈구하듯이.

 

이번 연수여행도 그런 배고픔을 확인하는 것으로 마무리 되었다. 경험과 지식이 얼마나 일천한지, 배우고 익혀야 할 것은 또 얼마나 많은지를 새삼 깨달은 것이 소득이라면 소득이라 하겠다. 다만 그 깨달음이 좌절이나 절망이 아니라 스스로를 추스르는 힘으로 기여하기를 바랄 뿐이다. 또 하나 국제협력자문관으로 활동하고 있는 비엔나의 김정원씨나 관계 공무원들처럼 우리 지역에 대한 따뜻한 열정과 자부심으로 무장된 사람들이 하나 둘 늘어났으면 하는 바람도 하나 덧붙이고 싶다.(끝)

 

/이종민(전주전통문화도시조성위원장·전북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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