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70년대부터 80년대 초반까지 전북 문인들과 화가들의 사랑방이었던 거리. 옛 아리랑제과 사거리부터 동문거리 사거리까지는 예술혼을 키워내는 곳이었다.
3년 전 이 곳에 위치한 '남영다방'에서는 문인들이 준비한 '싸롱시화전'이 열렸다. '석다방'이란 이름으로 더 잘 알려진 곳. 이 자리에서 한 원로시인은 "이제는 시간이 많이 흘러 '석다방'을 찾아오기도 쉽지않았다"며 아쉬워 했으며, 중견시인은 "이 거리에서 문인들과 어울리다 배가 고프면 우동을 시켜먹었는데 그 때 우동값이 150원이었다"며 옛 추억을 그리워 했다.
젊은 여성들이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마시듯, 시대를 막론하고 다방은 문화를 소비하는 장소다.
'예술인=술'의 공식이 통하던 70∼80년대는 특히 예술인들이 다방 문화를 주도해 나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툭 털어넣었던 소주 한 잔이 좋던 시절 '∼집'으로 끝나는 대포집이나 눅눅한 공기와 푹 꺼진 소파가 있던 다방은 예술가들의 아지트였던 셈이다.
"우리는 '정읍대학원' 다녔어요. 지금 '가족회관' 옆. 모르긴 몰라도 학교에서 보다 거기서 더 많이 배웠을 거예요."
'정읍대학원'은 80년대 예술가들이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던 '정읍집'을 가리킨다. '석다방'에 문인들이 많았다면, '정읍집'은 이중섭 그림까지 걸려있을 정도로 화가들이 많이 찾았다. 조각가 배형식 원광대 교수와 원로화가 하반영씨 등이 대표적인 단골이었다. 이 곳에서는 화가들이 현장에서 바로 그림을 그려 벽에 거는 일이 익숙한 풍경이었다. 선기현 전북예총 회장은 "'정읍집'과 같은 곳에서 어른들(선배 예술가들)을 만나고 그림과 글, 음악, 인생을 배웠다"고 말했다.
'이화집'은 문인들과 화가들이 드나들기로는 '정읍집'과 쌍벽을 이루던 곳. 상호에 대해서는 주인 여자가 이화여자대학교를 다니다 말았다는 말이 떠돌았다. 80년대 후반에는 동문사거리에 있는 '시인과 농부'가 유명했다. 이 곳은 신석정 시인이 자주 가던 곳으로, 젊은 문인들이 시인을 하늘 같이 모시고 다녔다고 한다.
"지금은 전주시 경원동 기업은행 근처에 '안키로(않기로)집'이 있었어요. 술 먹고 싸움 하지 않기로, 외상 하지 않기로…. 지금은 주차장이 된 옛날 전신전화국 자리 골목길에 있던 '갈매기집', 옛날 법원 앞에 있던 '버드나무집'도 예술인들이 많았어요. '88올림픽'이 열리던 무렵, 길도 정리하고 건물도 새로 지으면서 다 흩어지거나 없어졌어요."
이기반 원로시인은 "'안키로집'은 문인들도 드나들었지만 특히 미술과 음악하는 사람이 많았다"며 "거저 술만 마시는 게 아니라 작품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전했다.
소재호 전 전북문인협회 회장은 "그 때는 술집이나 다방에 예술인들이 모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다른 장르와의 어울림이 많았다"며 "지금은 예술가들의 성격이나 개성이 많이 다르다 보니 한군데로 몰리기 보다는 장르별로, 세대별로 나뉘는 것 같다"고 말했다.
90년대는 '다문방송'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문화가의 정보가 찻집 '다문'으로 집중됐다. 문학 관련 책들로 식당 한 쪽 벽면을 빼곡하게 채운 '정이가네'는 문인들이 잘 가는 밥집. 지금은 동문거리에 있는 '새벽강'과 '꽃'으로 예술가들이 몰리고 있다. '은자누나' '은자언니'로 불리는 따뜻한 주인장이 있는 '새벽강'은 나이를 초월해 문화예술인들이 많이 찾는 장소. 미술가 곽승호씨가 운영하는 '꽃'은 미술인 손님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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