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부터 4년간 전주에 작업한 15점의 작품을 '풍경의 내면'이라는 제목으로 서울에서 선보였다. 비록 작품의 판매량은 적었지만 작가에게는 잊을 수 없는 데뷔작이다. 지용출을 평생토록 판화가로 살게끔 만들어 준 그의 첫 번째 전시.
작가의 활동지역을 서울에서 전주로 옮긴 이후 4년 만에 대중 앞에 작품을 선보였지만 그는 여전히 민중미술가였다.
작업실 한켠에 붙여둔 첫 전시회 리플릿에서 '80년대의 결동에 참여하여 민중민술에 열정을 쏟아 부었던 작가의 그간의 정황을 살필 수 있는 전시'라는 미술평론가 이영욱 전주대 교수의 평을 볼 수 있었다.
"'개발지구(동판화, 1995년, 136×49cm)'에 있는 이 큰 나무 있죠. 지금도 삼천둔치에 그대로 남아 있어요."
전주가 한창 도시화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건너편 작업실에서 바라본 풍경은 매우 산만했을 것이다. 또한 매우 삭막했을 것이다.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 한옥의 기와가 작품의 중심이 되는 나무 아래쪽에 낮게 그려져 있다.
'용머리고개(동판화, 1995년, 44×47cm)'. 용머리고개는 빈난한 삶을 상징한다. 따닥따닥 붙어 있는 슬레이트 지붕, 허리를 굽히고 뒷발에 힘을 주어야 오를 수 있는 경사진 골목길. 가난한 서민들이 끼니를 잇고 있는 어두운 동네다. 예술가의 사회참여를 강조하는 작가는 개발이데올로기 뒤에 꼭꼭 숨겨져 있는 현실의 어둠을 꺼내 보이고 싶었을 게다.
판화가 지용출은 첫 전시를 통해 '에틱(etic)적 관점'을 가졌던 이방인에서 '에믹(emic)적 관점'을 가진 전주사람이 되었을지 모른다.
/정훈(문화전문객원기자·학예연구사·전주역사박물관 교육홍보팀장)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