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은 고대 이래 본래 삶의 문제와 그 치유문제를 다뤘다. 서양에서 철학이 종교적 형이상학적 세계해석에 매달린 이후 삶의 구체적인 문제를 다시 다루기 시작한 것은 19세기에 와서 비로소 이루어졌다. 쇼펜하우어나 키에르케고어, 니체 등이 삶의 절망, 불안, 도피, 의지 등의 문제를 다루면서 철학은 영혼의 의학으로 여겨진 것이다.
이러한 철학적 정신의학의 기초는 1981년 독일의 아헨바하(Gerd B. Achenbach)에 의해 '철학적 임상실천(Philosophische Praxis)'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체계화되기 시작했고 현재 독일어권에서만 약 200여개 정도의 철학적 임상단체가 활동하고 현재도 이는 전 세계적으로 확장되는 추세에 있다. 그의 철학적 임상실천의 작업은 구체적인 삶의 문제, 즉 삶의 고통이나 상처, 인생관이나 세계관, 인간관계의 갈등 등 개인적 문제뿐만 아니라 사회적 관계에도 관심을 갖는다.
『정신장애의 진단 및 통계편람』(DSM)에 따라 374개의 정신장애 가운데 해당 장애의 위치를 찾아내고 대부분 이를 약물처방에 의존하는 정신의학의 한계가 드러나면서, 현대에는 빈스방어, 바이츠첵커 등의 인간학적 정신의학이나 보스의 현존재분석치료, 프랑클의 로고테라피, 아헨바하의 철학적 임상실천 등 휴머니즘적 인간적 이해의 토대 위에서 삶의 치료문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이러한 논의는 철학에서 그 치료의 기반을 빌려온 것이다. 이는 한편으로는 정신의학적 치료의 한계에 대한 반성과 철학의 역할에 대한 성찰에서 나타난 것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철학의 위기에서 탈출하며 그 실용적 본원에 귀향함으로써 철학을 다시 살려보려는 현대적 시도로 보인다. 철학적 임상실천이나 철학치료, 철학상담 역시 이러한 움직임의 궤도 웨에 서 있다. 이는 단순히 철학의 실용화나 상품화와 연관된 것이 아니라, 철학의 대중화, 생활화, 실천화와 연관된 철학의 역할에 대한 근본적 문제제기 및 자기 성찰적 움직임에서 나온 것이다.
아헨바하는 철학적 임상실천을 "철학자들의 임상실천에서 전문적으로 추진되는 철학적인 삶의 상담"이라고 말하며, 여기에서는 삶의 의미나 정초, 삶의 모습을 만들고 유지하는 것, 윤리적 정신적 문제, 대인 관계, 죽음, 슬픔, 이별 등의 문제, 직업적 문제 등을 다룰 수 있고, 내담자의 삶에서 무엇이 옳고 그른 지에 대한 조언이 아니라 대화 가운데 역동적인 그 무엇이 일어나고 자신의 정신지평이 확장되는 경험을 유발할 수 있게 도움을 주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독일의 문학자 노발리스의 "철학적으로 생각한다는 것은 무기력하지 않게 만드는 것이며 활력을 주는 것이다"는 문장을 철학치료의 기초로 삼으며, 철학적 임상실천을 우리가 자신의 삶에서 "도약하게끔 도움을 주는 것이자 활력을 주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는 삶의 구체적 문제들을 함께 생산적으로 생각하게 하고 자신과 대면해 스스로 자신의 문제를 풀며 자신의 삶을 활력 있게 만들 수 있게 돕는 것이다. 철학은 자기변화를 이야기하게 하며 우리의 삶을 활력 있고 생명력 있게 만드는 치료적 에너지를 제공한다.
/김정현(원광대 인문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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