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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 '풀'을 사랑하던 시인 詩와 함께 잠들다

'홍안 소년' '군산의 터줏대감' 이병훈 시인 작고…전북문인의 장으로 치러

'들'과 '풀'을 사랑하던 시인. 엄혹한 시절, 우리나라의 근현대사를 노래하던 그는 민중의 힘을 여성적 언어로 감지한 시인이었다.

 

작가란 아름다움으로 미칠 수 있는 존재. 이병훈 시인은 "미쳐야 시를 쓴다”고 말했다.

 

 

"그냥 술을 마시면 돼요. 적당히 취하면 두세 시간은 오롯이 시작에 매달릴 수 있지요.”

 

'홍안소년'으로 불리던 그. 누구에게는 '손이 크고 따순 분'으로, 또 누구에게는 '군산의 터줏대감'으로 기억되던 시인이 지난 15일 오후 9시40분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향년 84세.

 

1925년 군산 옥산면 당북리에서 태어난 시인은 서당과 소학교를 다닌 것이 학력의 전부였지만, 한국전쟁 후 우연하게 기자가 됐다. 1948년 군산신문사 기자를 시작으로 군산민보사, 삼남일보사, 군산매일신문사 등에서 사회부장, 편집국장, 논설위원 등을 지냈다.

 

이후 제대로 된 시를 쓰기 위해 한국어 공부를 다시 시작했고, 신석정 시인의 추천으로 1959년 「자유문학」에 시 '단층'을 발표하며 문단에 나왔다. 그에게 스승은 시를 쓰게 하는 힘. "좋은 작품을 쓰려고 일부러 생각하면 잘 안된다. 그럴 때면 선생님을 떠올린다”고 했던 그는 석정 선생의 삶이나 작품에 대해 쓴 연작시를 묶어 「변산고을에 흐르는 물은」을 펴내기도 했다.

 

석정 선생 작고 10주기인 1984년에는 김민성 이기반 황길현 허소라 시인과 함께 석정문학회를 결성해 제1대 회장을 지냈으며, 2007년 석정 선생의 시정신을 기리는 '제1회 촛불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삶의 내면성을 파헤치고 피폐된 농촌의 휴머니스트를 추구해 온 시인은 1970년 발표한 첫번째 시집 「단층」 이후 「하포길」 「멀미」까지 세권의 시집으로 시 쓰는 법을 배웠다고 말하곤 했다.

 

또한 그는 뿌리를 한 곳에 내리고 고향의 풍광을 지킨 시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1948년 군산문학회 동인으로 작품 비평회 등 군산지역 문학동인의 근간을 마련했던 시인은 1990년대 부터는 군산문인협회 회장, 군산예총 회장, 군산문화원장 등을 지내며 군산 문화를 살찌우는 데 큰 기여를 했다.

 

'제14회 전라북도 문화상' 문학부문 수상(1973) 이래 '군산시민의장' 문화장(1976), '제1회 모악문학상'(1993), '제38회 한국문학상'(2001) 등을 수상했다. 2006년 '제1회 군산문학상'을 수상하면서는 "문학적 성과나 다른 의미로 주는 상이 아니라 문우들이 제정해 주는 우정의 상으로 알고 즐거운 마음으로 받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듬 해 군산지역 문인들이 추진해 온 이병훈 시비 건립은 시비 세울 장소를 마련하지 못하고 무산돼 아쉬움을 남겼다.

 

2007년 가을 '제1회 촛불문학상'을 수상하며 "시집 내려고 준비를 다 해놨는데, 나이를 먹어서인지 활동력이 떨어진다”고 했던 시인에게 결국 2001년 발표한 「물이 새는 지구」가 마지막 시집이 됐다. "한 때 농사를 지었는데 환경문제에 이르렀다”는 시인은 늘 생활에서 우러나오는 작품을 쓰고 싶다고 했다.

 

17권의 시집과 1권의 수필집 등 나이가 들어가면서도 지치지 않은 문학혼을 보여줬던 고 이병훈 시인의 장례는 전북문인장으로 치러진다. 장례위원장은 이동희 전북문인협회장, 집행위원장은 이복웅 군산문화원장이다.

 

빈소는 군산은파장례식장에 마련됐다. 유족으로는 석기(자영업) 문기(자영업) 민기(군산대 근무) 인기(전북도청 문화예술과)씨가 있다. 발인은 17일 오전 10시, 장지는 군산시 옥산면 당북리 선영 하. 063) 445-4445

 

도휘정·홍성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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