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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재발견 현장답사] ③순교의 성지·초기 성당을 찾아서

한국인 최초 천주교 사제 김대건 신부의 신앙심·삶 재조명

천호성지 ([email protected])

꽃들이 만발한 25일, 전북일보와 전주문화사랑회는 전주 시민들과 함께 '순교의 성지와 초기 성당을 찾아서'라는 테마로 기획답사를 떠난다. 답사 코스는 한국 10대 천주교 성지 가운데 하나인 천호성지와 여산성지 그리고 나바위 성당 등이다.

 

전통문화 중심도시를 표방하는 전주가 자리한 이 땅 전라북도는 우리나라 종교문화의 중심지이다. 서해와 나란히 드러누운 너른 들녘과 남도의 하늘을 떠받치는 지리산이 우뚝 솟은 이 땅은, 한과 설움에 맺힌 민중에게 밝은 내일을 약속하던 희망의 땅이었다. 천년세월을 뛰어넘어 새롭게 우리에게 다가온 미륵사 석탑으로 대표되는 미륵불교의 중심지가 이 땅이었다. 경주 용담에서 시작된 동학이 혁명의 불길로 타오른 곳도 이 땅이었다. 기독교가 처음 들어와 널리 퍼져나간 중심에도 이 땅이 자리하고 있다. 200여 년 전에 거룩한 피를 하느님에게 바친 천주교 순교자의 영혼이 서린 곳도 바로 이 땅이다.

 

왼쪽 위부터 십자가의 길, 십자가의 길 1처, 순교자 묘역.오른쪽 위부터 성인묘역, 야외제대, 나바위 성당. ([email protected])

천호성지는 완주군 비봉면 내월리에 어머니의 아늑한 품처럼 자리하고 있다. 여기는 1866년 병인박해 때 전주 숲정이에서 순교한 여섯 성인 가운데 이명서(베드로) 손선지(베드로) 정문호(바르톨로메오) 한재권(요셉) 등 네 분 성인과 1866년에 공주에서 순교한 김영오(아우구스티노) 그리고 1868년에 여산에서 순교한 열 분의 무명 순교자 등이 묻혀 있는 곳이다.

 

천호성지가 오늘날 모습을 갖추기까지는 많은 분의 노력과 헌신이 있었다. 일찍이 고산 본당의 베르몽 신부와 신자들은 이 부근의 땅 75만 평을 매입하고 이 땅을 교회에 헌납함으로써 성지 조성의 길을 열었다. 천호성지 조성 사업은 1983년 천주교 호남교회사연구소(소장 김진소 신부) 주관으로 천호산에 묻힌 순교자들의 유해를 발굴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그 결과 1985년 11월 30일 자치 교구 설정 50주년 기념일에 맞춰 새롭게 단장한 순교자 묘역을 축성하게 되었다. 또한 김진소 신부의 주선으로 조각가 이춘만이 제작하여 기증한 청동 조각상이 숲 속 열네 곳에 자리하고 있다. 토속적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예수님 조각상을 감상하며 숲길을 거니노라면, 천주교 신자이든 비신자이든 간에 참다운 삶의 의미를 한 번쯤은 돌이켜 보게 될 것이다.

 

천호성지에서 고개를 넘어 여산 쪽으로 가다보면 여산성지가 있다. 여산에서 천주교 신자들이 순교하게 된 것은 1866년 병인박해 때문이었다. 고산·금산·용담 등지의 수많은 신자들이 체포되어, 여산 배다리 인근에 있던 감옥 터와 숲정이 형장에서 처형되었다. 일부 신자들은 여산 동헌 앞마당에서 얼굴에 창호지를 발라 처형하는 백지사(白紙死) 형을 당하기도 했다. 순교자의 시신은 미나리 밭에 던져졌는데, 신자들이 수습하여 천호 교우촌의 뒷산 여기저기에 안장했다. 그 후 1983년에 전주교구에서 여산 순교자 중 김성화 등 10명의 유해를 발굴하여 천호성지 무명 순교자 묘역에 안장하였다. 순교자들이 백지사를 당한 터와 숲정이 형장은 현재 사적지로 조성되어 있다.

 

익산시 망성면 화산리에 자리한 나바위성당은 한국 천주교회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 성당이다. 여기는 한국인 최초의 천주교 사제인 김대건 신부가 이 땅에 천주교를 전파하기 위해 첫 발을 내딛은 곳이다. 1837년부터 최양업·최방제와 함께 마카오에서 신학 공부를 하던 김대건은 1845년(헌종 11) 8월 17일에 페레올 주교로부터 사제 서품을 받았다. 김대건 신부는 1845년 8월 30일에 제3대 조선교구장인 페레올 주교, 다블뤼 신부, 한국 교우 12명과 함께 중국 상해를 떠나 거센 파도를 헤치며 조선으로 향하였다. 김대건 신부 일행은 천신만고 끝에 드디어 1845년 10월 12일 강경에서 조금 떨어진 황산포의 나바위 화산 밑에 배를 대었다. 이처럼 역사적 의미가 큰 곳에 자리한 나바위 본당은 1897년에 설립되었다. 초대주임으로 부임한 베르모렐 신부가 성당 부지를 매입하는 등 본당의 기틀을 마련하고, 1906년에 성당 건립 공사를 시작해 1907년 12월에 완공하였다. 성당은 50여 칸에 이층 형식의 목조 기와 건물이었다. 정면은 5칸, 측면은 13칸이었으며, 정면 용마루 부분에 작은 종탑이 있었다. 성당 내부 공간은 장방형으로 기둥에 의해 좌우로 양분되었는데, 이는 남녀 신자의 자리를 구분하기 위해서였다. 1916년에는 성당 증축 공사를 벌여 성당의 벽을 서양식 벽돌로 바꿨으며, 1917년에는 종탑도 새로 세웠다. 그리하여 서양식 종탑과 한옥 성당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는 오늘날의 아름다운 성당 모습을 띠게 되었다.(천소성지·여산성지·나바위성당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김진소, 「천주교 전주교구사Ⅰ·Ⅱ」, 천주교 전주교구, 1998, 참조)

 

'순교의 성지와 초기 성당을 찾아'라는 테마로 기획된 이번 답사에서는 순교자들이 거룩한 피를 흘린 여산성지와 순교자들의 소중한 유해가 묻힌 천호성지 그리고 서양문화와 동양문화가 조화를 이룬 나바위성당을 둘러볼 것이다. 신록으로 물든 봄날 산하를 바라보며 역사 유적지를 찾아가는 이번 길이 그저 눈으로만 보는 답사가 아니라, 이기심과 물욕이 판치는 세상에서 잠시나마 참된 신앙과 참된 삶이란 무엇이진 생각해보는 그런 시간이 되기를 두 손 모아 빌어본다.

 

 

/변주승 교수(전주대 역사문화콘텐츠 전공 교수)

 

 

 

※ 이번 답사는 '순교의 성지와 초기 성당을 찾아서'(안내 변주승 전주대 교수) 25일 오전 9시 전주역사박물관 출발

 

천호성지 → 여산성지 → 나바위성지

 

※ 다음 답사는 5월 9일 '중바위에 서린 후백제 정신'(안내 조법종 우석대 교수)

 

※ 답사신청은 전주문화사랑회(www.okjeonju.net)

 

도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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