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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의 책으로 읽는 세상] ③교양으로 읽는 건축

<임석재 지음·인물과사상사·2008>전북의 도시 '꽉 막힌' 광주를 모델삼지 말라

우리나라 주택 1322만채 가운데 52.7%(696만채)가 아파트다. 아파트 비율이 가장 높은 지역은 어디일까? 서울일까? 서울의 아파트 비율은 55.7%로 전국 평균은 넘지만 1위는 아니다. 놀랍게도 70.9%를 기록한 광주다. 그 뒤를 이어 울산 64.1%, 대전 63.8%, 경기도 62.4%, 대구 60.1% 등이다. 광주의 아파트 비율이 가장 높다는 게 왜 놀라운가? 90년 광주의 아파트는 30%에 불과했다. 채 20년도 걸리지 않은 세월에 아파트와 단독주택 비율이 정반대로 바뀌었으니, 이 어찌 놀라운 일이 아니랴.

 

더욱 놀라운 건 광주가 '민주화의 성지'로 불려져 왔다는 사실과 관련돼 있다. 아파트는 그 어떤 장점에도 불구하고 공동체 의식을 약화시키는 주범 중의 하나로 꼽혀 왔다. 아파트 단지의 대규모 건설은 '헤쳐 모여'식의 거주 재조정과 기존 공동체의 '뿌리 뽐힘'을 수반한다. 또한 아파트의 주거 구조는 사람들간의 격리·분리를 촉진하는 데다 자동차 대중화로 인한 '교외 아파트로의 탈출'은 상호소통이 없는 '거주집단'을 양산한다. 아파트의 투자·투기상품화로 인한 잦은 거주지 이동은 공동체 의식을 약화시키는 추가적인 요인이다.

 

광주엔 아직도 공동체 의식이 살아있는가? 공론화되질 않아서 그렇지, 광주의 시민운동가들을 만나보면 한결같이 하는 말이 "큰 일 났다"는 것이다. 광주는 이른바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에서 더 이상 선진 지역이 아니다. 이게 과연 70.9%라는 아파트 거주율과 무관할까?

 

우리는 공공커뮤니케이션의 문제를 오직 언론 등 정보미디어 중심으로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실은 정보미디어의 수용환경, 즉 아파트 같은 것이 훨씬 더 중요할 수 있다. 왜 우리는 우리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3대 요소인 의식주(衣食住)의 토대를 구성하는 주(住)의 문제를 공공적 차원에서 생각하는 데에 대해 무관심할까? 이런 의문에 조금이라도 공감하는 분들에겐 임석재 이화여대 건축학과 교수의 「교양으로 읽는 건축」(인물과사상사, 2008)이라는 책을 추천하고 싶다.

 

임 교수는 건축학자인 동시에 인문학자다. 건축에 관한 이야기를 보통 사람도 흥미를 느낄 수 있게끔 재미있게 쓰는 능력을 가진 동시에 늘 공공적 차원의 문제 제기를 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간 그가 출간한 「서양건축사(전5권)」(북하우스, 2003-2008), 「한국 전통건축과 동양사상」(북하우스, 2005), 「서울, 골목길 풍경」(북하우스, 2006), 「건축, 우리의 자화상」(인물과사상사, 2007), 「우리 옛 건축과 서양 건축의 만남」(대원사, 2007), 「한국 현대건축비평」(예경, 2008) 등이 그걸 잘 말해준다.

 

서울 잠실에 지어진다고 하는 높이 555m, 122층(일설엔 600m, 130층)의 위용을 자랑하는 제2롯데월드를 두고 말이 많다. 특혜 논란은 접어두고 과연 초고층건물이 필요하느냐에 대해서도 의견이 엇걸린다. 예컨대, 소설가 이문열씨는 지난 2004년 "서울도 지금쯤은 세계가 돌아볼 만한 초고층 건물 하나쯤 가져도 좋지 않을까"라는 희망을 피력한 바 있다. 임 교수의 생각은 어떨까?

 

"지금 초고층의 기록 경쟁에 목매다는 도시들은 모두 아시아권의 개발도상국들이거나 졸부 나라들이다. 그 이면에는 부동산 졸부가 겉치레를 위해 허장성세를 부리는 보상심리가 깔려 있다. 대부분의 선진국들은 수직선 경쟁 대신 수평선의 아름답고 인간적인 조형미를 개발하는 일에 열심이다. 수평선의 미학은 자신만의 심미성과 예술적 가치를 획득하면 숫자 기록과는 무관하게 영원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제는 이것이 부의 원천이 되는 시대로 접어들고 있는 것이다. 이제 우리도 이 추세에 합류할 만큼 성숙하지 않았는가."

 

임 교수는 이른바 '토건국가'에 대해서도 그것이 낡은 모델임을 역설한다. 우리나라에서 토건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국민총생산의 25%, 건설업은 15%다. 그는 부정부패를 수반한 압축성장의 와중에서 국민들 머릿속에 건축은 근대화의 기수요 돈 나오는 창구로 굳어졌다고 지적하면서,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경제 전체가 건축 경기에 의존하는 비율이 선진국에 비해 2~3배 높은 나쁜 체질이 굳어졌다. 이런 의존도는 다시 건축에서 돈을 빼내려는 시도를 배가시키는 악순환을 형성했다."고 말한다. 그는 후기 자본주의에 적합한 토건업 비중은 최대한 15% 미만이라며, 변화를 제안한다.

 

건설은 대부분 아파트다. 상위 10개 건설 회사들의 아파트 시장 의존율은 70%를 상회하며, 건설회사 전체를 보면 100% 아파트 사업만 하는 곳이 90%가 넘는다. 그는 "요즘 한국에서 건축학과를 졸업해서 대형 설계사무소에 들어가면 100% 아파트, 주상복합, 백화점, 대형상가, 대형마트, 오피스빌딩 등의 일만 하게 된다. 이런 기능 유형들은 처음 출발부터 오로지 경제성이나 상업성에 의해서만 주도되기 때문에 세밀한 작품성이나 인간을 위한 섬세한 정성 따위는 철저하게 제외된다."고 개탄한다.

 

물론 우리는 현실적으로 아파트의 여러 장점을 외면할 수는 없다. 중요한 건 여기서도 화이부동(和而不同)일 터이다. 아파트를 짓더라도 '어떻게'가 중요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최근 한국주택공사가 전주시 덕진구 만성지구 안 연립주택터에 저층형 100호(2011년 착공)에 전통한옥 디자인을 시범 적용하기로 하고 얼개를 기술한 '공동주택 한옥디자인'을 발표한 것도 그런 시도의 일환이리라.

 

공동체문화의 가치를 배려하는 건 비단 아파트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임 교수는 마을, 재래시장, 구멍가게, 능선, 개천을 살리자고 호소한다. 그냥 막연히 감성적으로만 하는 호소가 아니다. 그는 '재래시장 살리기'와 '개천 살리기'의 장점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재래시장은 땅을 토대로 모든 것을 사람의 눈높이에 맞추어 형성된 공간이다. 그렇기 때문에 재래시장은 자연의 외기(外氣)와 사람의 숨결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묘한 공간이기도 하다. 재래시장에 들어서면 유독 생생한 삶의 맥박이 느껴지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이다. (…) 개천은 단순히 물리적 면적으로만 환산될 수 있는 부동산 용지가 아니다. 개천은 도시에서 가장 쉽게 땅을 밟고 자연의 변화를 느낄 수 있는 소중한 옥외공간이다. (…) 개천은 가꾸기에 따라서 공원이나 놀이터, 심지어 주민들의 텃밭이나 어린이들의 야외 실습장 등으로 매우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 이럴 자신이 없으면 다음 세대들이 가꾸도록 그냥 놔두기라도 해야 할 것이다."

 

전북의 도시들을 어떻게 가꿀 것인가? 광주 제1관문 북구 운암동 입구엔 최고 26층에 이르는 2700여 가구 아파트가 병풍처럼 도심 방향의 시야를 완전히 차단하고 있다. 어디에서나 사방으로 산을 볼 수 있었던 대전은 이제 산대신 아파트 병풍만 구경할 수 있을 뿐이다. 아파트가 도심을 둘러싸면서 이산화탄소가 발생하고 온도상승으로 이어지는 '열섬 현상'이 매년 심해지고 있다. 전북의 도시들이 정녕 광주와 대전을 모델로 삼아야 할까? 부디 토건·건설·건축 업무를 담당하는 전북의 모든 공무원들이 이 책을 읽고 전북 도시들의 미래를 심각하게 생각해주길 요청드리고 싶다. 공감대를 형성하면 좋겠다.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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