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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침묵하는 돌의 말에 귀를 기울이다

채호기 시집 '손가락이 뜨겁다' 출간

채호기(52) 시인은 어느 토요일 산을 찾았다가 길을 가로 막은 큰 돌 하나를 만났다고 한다.

 

유난히 검은 그 돌은 시인에게 말을 건넸고 시인은 즉각 알아들을 수 없는 그 말의 의미를 곰곰이 생각하느라 산행마저 포기했다.

 

시인은 이 사건이 "내가 언어에 대해 골똘하게 생각하기 시작한 하나의 계기가 되었다"고 말한다.

 

"시인은 자신의 외부에 있는 언어를 빌려다 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몸에 들어 있으며 자신의 일부인 언어를 끄집어냄으로써 시를 쓴다. 그럴 때 몸을 떠난 시의 언어는 돌의 언어가 아닐까? 누구의 말도 아닌, 발화되지 않고도 거기 있는 침묵의 의미로서의 돌의 말, 언어의 몸으로서의 돌."(시인의 산문 중)

 

채호기 시인이 '수련' 이후 7년 만에 펴낸 신작 시집 '손가락이 뜨겁다'(문학과지성사 펴냄)는 그때부터 시인이 몰두하기 시작한 언어에 대한 탐구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몸'과 몸을 매개로 한 '소통'을 지속적으로 탐구해왔던 시인이 이제 몸의 일부로서의 '언어'로도 그 탐구영역을 넓혀간 것이다.

 

"말하는 돌을 만났다. / 경이로운 말은 / 검고 우뚝했다. / 오래 서서 눈 들어 / 열심히 들었다. // '돌은 산의 입술일 뿐 / 생각과 말은 산에서 생겨나는 것'이라고 / 돌이 말한다."('돌의 말 2' 중)

 

"돌은 / 시 / 눈으로 / 읽을 수 없는 / 당신 / 가슴에 빠뜨린 / 시 / 돌에 새긴 / 점자를 더듬어 읽어도 / 내용을 알 수 없는 / 시 / 손바닥에 감싸인 / 당신의 / 심장 / 읽지 않아도 / 두근거리는 / 시"('당신의 심장')

 

채호기 시를 특징 지우는 감각적인 '물'의 이미지와 '관계'에 대한 성찰도 이번 시집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물에 젖은 하얀 손이 돌 / 을 깎았다, 손이 물을 / 잡을 때까지. 돌 부스러기들 / 이 하얀 손에 얼룩졌다, 돌을 / 읽을 수 있는 문장이 묻어날. / 물에 젖은 하얀 손이 돌의 문장을 / 닦았다, 그녀가 비칠 때까지 문질 / 렀다, 돌이 그녀를 읽고, 그녀가 / 돌에 비칠 수 있도록."('돌의 메아리-마이산' 중)

 

"내가 들여다보든 당신이 들여다보든 / 우리 마음은 알 수 없다. 서로 속을 / 훤히 알고 있다 싶어 첨벙 뛰어들면 / 얕은 바닥에 머리가 깨지거나 너무 깊어 / 그 끝을 알지도 못한 채 영영 도로 / 나오지 못한다. 우리가 서로 알고 / 주의해야 할 것들은 아직도 너무 많다."('물 밑바닥' 중)

 

180쪽. 7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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