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에 가보면 젖먹이 아이를 데리고 온 엄마들을 종종 본다. 그러고 보면 나는 꽤 늦은 나이에 어린이 책을 접했다. 사촌 누나에게서 물려받은 전집을 닳도록 보던 큰 아이가 3학년 되던 해 남편의 권유로 도서관을 드나들며 어린이 책을 빌려와 아이와 함께 읽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한 도서관과 어린이 책과의 만남은 생활의 새로운 활력소가 되었다.
몇 해 전 인기리에 방송된 MBC '느낌표'에서 각 지역에 '기적의 도서관'을 지어주는 것을 보면서 정말 부러웠다. '기적의 도서관'은 어린이 전용 도서관이다. 어린이들에게 맞게 지은 건물과 좋은 책으로 가득 찬 도서관을 보면서 전주에도 그런 도서관이 꼭 세워지기를 바랐다. 그러나 '기적의 도서관'은 전주를 비껴서 순천과 정읍에 세워졌다. 참 부럽고 야속했지만 어쩌랴? 내가 지을 수도 없는 노릇이니. 그렇게 체념하고 지냈는데 생각지도 않게 전주에도 어린이 전용도서관이 생기게 되었다.
전주 송천동 롯데마트가 지어질 당시 조건으로 내건 문화시설이 공원과 함께 어우러진 어린이도서관이었다. 전주시로부터 민간 위탁받아 운영하는 것이라 운영팀이 꾸려가는데 어려움은 많지만, 정말 좋은 어린이 도서관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순천 기적의 도서관'을 답사하면서 느티나무 도서관 운영사례를 공부하면서 어린이를 위한 도서관을 만들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날마다 토론하고 연구하고 있다. 수 백 명의 초등학교 아이들의 의견을 묻는 과정을 거치면서 '책마루'라는 이름이 정해졌다. 그리고 여러 번의 논의 끝에 '날마다 책을 읽어주는 도서관'을 가장 중요한 활동으로 정했다. 세계에서 읽기 능력 1위를 차지하는 핀란드의 아이들은 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 글자를 배우지 않지만, 책을 읽어주는 어른들 덕분으로 세계에서 뛰어난 독서 강국이 됐다.
'순천 기적의 도서관'이나 '느티나무 도서관'에서도 일주일에 세 번 정도 책 읽어준다. 다른 도서관에 비하면 꽤 많은 시간이다. 때문에 이곳도 매일 책을 읽어주는 시간을 갖기로 했다. 문제는 충분한 자원 활동가를 확보하는 것. 시민이 운영하는 어린이 도서관이니 만큼 스스로 참여하는 일꾼들이 많아야 한다. 그래서 나는 아이들보다 일꾼이 더 많은 도서관이 되길 바라고 있다. 글자를 모르는 아이도, 하루종일 학교에서 지친 아이도 '책마루'에 오면 편한 자세로 앉아서 기분 좋게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으로 거듭나기를 바라는 것이다.
본래 마루는 어린 시절 학교 갔다 와서 책가방 던져놓고 누워 쉬던 곳이었고, 배 깔고 연필에 침 묻혀 가며 숙제하던 곳이었으며, 비 오고 눈 오는 풍경을 볼 수 있고 가족과 친구와 감자를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던 곳이다. 즉 쉼과 소통과 관계를 맺어주는 곳이었다. 바로 그 역할을 '책마루' 어린이 도서관이 하려고 한다. 책과 함께 쉼을 얻고 소통의 방법을 찾고 그 안에서 만난 사람들과 아름다운 관계를 맺어 가게 될 것이다. 오늘은 이런 꿈을 안고 '책마루' 어린이 도서관이 정식으로 문을 여는 날이다. 앞으로 지역사회에서 지역사람들과 아름다운 공간을 만들어 갈 것을 기대한다.
/김은자(어린이도서연구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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