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김완주 전북도지사가 이명박 대통령에게 보낸 일명 '큰절편지'를 두고 일어난 논란을 지켜보며 착잡한 생각이 들었다. 논란의 핵심이 '중앙의 논리'에 의해 규정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논란은 적어도 전북에서는 철저히 '지방의 눈'으로 바라봐야 한다는게 내 생각이다.
먼저 짚고 넘어가자면, 표현의 문제는 김 지사의 잘못이 컸다. 김 지사가 편지 서두에서 '존경하는 대통령님! 오늘 저와 200만 전북도민들은 대통령님께 큰 절을 올립니다'라고 쓴 것은 분명 잘못이었다. 나는 이 대목을 읽으며 과거 이명박 서울시장의 '서울시 봉헌' 발언을 떠올렸다. 감사의 의미를 표현하는 것은 좋지만 보다 신중해야 했다. '전북도지사로서 감사'한다는 정도만 되었더라도 이번 논란은 커지지 않았을 테다.
내가 주목하는 부분은 '배신론'이다. 야당인 민주당에 적을 두고 있는 김 지사가 여당의 핵심인 이 대통령에게 '감사'를 전하는 것이, 적(敵)에게 '큰 절'을 하며 머리를 조아리는 '배신'과 다름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방의 관점은 중앙과 다르다. 지방자치단체장은 지방의, 해당 지역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는 정치가 겸 행정가다. 지역민의 투표로 선출되는 정치인이기도 하지만 행정력을 움직이는 행정가이기도 하다. 때문에 중앙정치의 틀에서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 많다.
구조적인 부분도 마찬가지다. 지자체의 핵심 예산과 정책 결정권은 결코 중앙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과세부터 재정까지 중앙정부의 비중이 훨씬 크다보니 큰 사업일수록 중앙의 힘이 커진다. 이런 상황에서 새만금이라는 거대 규모의 사업을 추진하려면 중앙부처와의 협력이 필수적일 수 밖에 없다.
김 지사는 자타가 공인하는 '새만금 전도사'다. 임기 내내 새만금 사업을 전북의 신성장동력으로 평가하며 추진에 앞장서왔고 특별법 제정까지 이뤄냈다. 그런 상황에서 최근 정부가 새만금종합개발계획을 발표했고, 김 지사는 이를 적극 환영했다. "환영의 도가 지나쳤다"는 목소리도 있다. 표현이 과도했을 수 있다. 그러나 김 지사와 이 대통령간의 불편한 관계를 고려하면 역으로 다소 너그러워질 수도 있다.
익히 알려진 사실이지만 김 지사는 이 대통령과 정치적 '악연'을 가지고 있다. 두 사람은 과거 전주시장과 서울시장, 전북도지사와 유력대선후보였을 때에 잇달아 부딪히며 날을 세워왔다. 아마 현 지자체 단체장 중 대통령과 가장 많이 부딪힌 단체장일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김 지사가 이 대통령에게 편지를 보내 '소통'을 시도했다. 새만금 사업 추진을 위해 좋지 못한 정치적 관계를 무릅쓰고 편지를 보낸 것이다.
여기에 '배신론'을 제기하면 할 말이 없어진다. 많은 권력과 예산, 사업을 정부에서 쥐고 있는데 타 정당 단체장이라는 이유로 정부와 거리를 두어야 한다면 정권 5년 내내 야당 지자체장은 쥐죽은 듯 살라는 말인가? 야당 단체장이 속한 지역은 아무런 사업도 추진할 수 없나? 이것이야말로 풀뿌리 정치부터 중앙 정치에 예속시키는 것 아닌가?
다시 생각해보자. 표현의 문제는 분명 잘못된 것이지만, 지역을 위해 정치적 성향이 다른 정권과도 협력할 수 있다는 입장을 보인 점은 칭찬할 수 있는 부분이다. 이는 단순히 전북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지역을 위해 발벗고 뛰는 각 지역의 크고 작은 단체장에게 모두 적용되는 말이다. 적어도 지방자치에서는, 정당의 다름은 '다름'일 뿐이지 '틀림'이 아니다. 그것이 소통의 지름길이다. 지자체장들이 '다름'을 '틀림'으로 여기고 소통을 등한시한다면 지역민의 삶은 고단해질 뿐이다.
/성재민(인터넷신문 선샤인뉴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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