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기자 왜 잘 못하나
가끔 한국의 기자나 교수를 미국의 기자나 교수와 비교하여 비판하는 말을 듣게 된다. 물론 미국은 잘 하는데 한국은 잘 못한다는 질책이다. 그런 질책에 반은 동의하지만 나머지 반은 동의하지 않는다. 동의하지 않는 반엔 이른바 '사이즈'의 문제가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인구 사이즈와 언어권 사이즈다.
미국 인구는 한국 인구의 6배 이상이다. 다른 영어권 인구(영어 독해 인구 포함)까지 합하면 20배는 될 것이다. 무슨 말인가? 그만큼 보상이 크다는 뜻이다. 예컨대, 기사건 책이건 속된 말로 히트를 한번 치면 미국 기자나 교수는 한국 기자나 교수에 비해 20배 이상의 보상을 받을 수 있다. 강연도 마찬가지다. 「티핑포인트」 「블링크」 「아웃라이어」 등의 베스트셀러로 국내에도 널리 알려진 미국 기자 말콤 글래드웰의 경우는 강연 1번에 4만 달러를 받는다. 한국의 최고 인기 기자가 강연 한 번에 받을 수 있는 돈의 20배 이상을 받는 것이다. 물론 교수들도 마찬가지다. 한국에서도 그런 수준의 보상이 가능하다면, 골프를 즐기는 기자와 교수들의 수가 급감할 것이다. 늘 시간의 압박을 받아야 할 기자와 교수들이 시간이 많이 걸리는 골프를 즐긴다는 건 아무리 애 써도 거기서 거기니 골프나 열심히 치면서 건강도 돌보고 정치도 하자 뭐 그런 심리 때문이 아니겠는가.
미국 아메리칸대학 신문방송학과 교수 알리샤 C. 셰퍼드(Alicia C. Shepard)가 쓴 「권력과 싸우는 기자들」(차미례 옮김, 프레시안북, 2009)을 읽으면서 엉뚱하게도 그런 생각을 했다. 이 책은 워터게이트 사건을 파헤쳐 리처드 닉슨 대통령을 하야시키는 데에 결정적 역할을 한 '워싱턴포스트'의 두 기자 밥 우드워드와 칼 번스틴을 다루고 있는데, 책의 첫 장면부터가 기가 막히다.
두 기자는 취재수첩 등 자신들의 워터게이트 사건 관련 기록물 일체를 지난 2002년 텍사스대학교 기록보관소에 팔았는데, 그 액수가 자그만치 500만 달러다. 이들은 이미 「대통령의 사람들」, 「마지막 나날들」 등의 대박 베스트셀러와 '대통령의 음모'라는 대박 영화의 판권으로 수백만달러씩을 벌어들였으며, 강연 한 번에 몇 만 달러씩 받는 호사를 누려왔는데, 이건 해도 너무 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배 아파해야 할 이유는 없지만, 아무리 큰 특종을 터뜨려도 돈벌이와는 무관한 우리 기자들의 딱한 처지가 안스러워서 해본 생각이다.
유명인사라면 사족을 못 쓰는 미국 특유의 '유명인사 문화'가 가세해서 그런 일이 벌어졌겠지만, 그걸 잠시 눈감아 준다면 이 책에선 언론과 관련해 얻을 게 많다. 기자, 언론학도, 언론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눈여겨 볼 만한 이야기 거리들이 풍성하다.
두 기자 모두 무한한 호기심과 더불어 지칠줄 모르는 근성의 소유자다. 사실 이 두가지 요소는 기자의 생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두 사람 모두 출세한 다음에 관리직을 맡기도 했지만, 그건 다 실패했다. 이게 중요하다. 기자 일도 잘 하면서 나중에 관리직도 잘 한다면 탁월한 사람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다르게 볼 수도 있다. 애초부터 기자 체질이 아닌 사람이 기자가 된 건 아닐까? 기자를 조로(早老)하게 만들어 모두 관리직으로 가게 만들고 죽을 때까지 발로 뛰는 대기자 문화를 키우지 않는 우리 언론계가 성찰해야 할 대목이다.
우드워드는 '워싱턴포스트'에 수습사원으로 입사했지만 능력을 인정받지 못해 수습후 쫓겨났다. 그는 메릴랜드주의 작은 주간지 '몽고메리 센티널'에 입사해 실력을 갈고 닦았다. 그가 그곳에서 이룬 성공작 중의 하나는 몽고메리 카운티 안에 있는 모든 고교 교장들의 능력을 비교 평가한 기사였다. 수백명의 사람들이 피켓을 들고 신문사에 쳐들어왔지만 학부모들은 대환영을 했다고 한다. 우리 지역 언론사들의 경우 언론사 앞에서 항의 시위가 1년에 몇 번이나 일어날까? 거의 없다면, 그건 사실상 죽은 언론이라고 말해도 무방하리라. 언론이 어떻게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겠는가?
우드워드는 '몽고메리 센티널'에서의 활약을 발판으로 '워싱턴포스트'에 다시 들어가는 데에 성공했다. 예일대 졸업후 해군 장교로 5년간 복무했기에 이때 나이가 29세였다. 그는 입사하자마자 노동조합에 찍혔다. 일에 미쳐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하면서도 시간외 수당을 전혀 요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걸 잘한 일이라고 칭찬을 해야할지 말아야할지 잘 모르겠다.
▲ 워터게이트 특종으로 돈방석
워터게이트 사건을 맡았을 때에 우드워드는 입사한지 1년도 안되는 병아리 기자였고, 번스틴은 데스크의 눈밖에 난 기자였다. 왜 그 중요한 사건을 이런 기자들에게 맡겼을까? 그 취재는 백악관을 출입하는 1류 정치부 기자들은 할 수 없었던 일이었다. 그들은 이미 체제내에 흡수되었거나 궂은 일은 하지 않으려는 귀족에 가까웠다.
이젠 널리 알려진 이야기지만, 이들의 워터게이트 취재는 '딥 스로트(deep throat)'라 불린 익명의 제보자에 크게 의존했다. 원래 '딥 스로트'는 72년에 개봉된 최초의 합법적 포르노 영화 제목이었지만, 이후 '은밀한 제보자' 또는 '심층취재원'을 가리키는 보통명사가 되었다.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하야 후에도 '딥 스로트'의 정체를 놓고 그간 수많은 추측들이 난무했는데, 33년만인 2005년 5월에서야 월간지 '배니티 페어'의 보도를 통해 모든 진실이 밝혀졌다. '딥 스로트'는 당시 연방수사국(FBI) 2인자였던 마크 펠트였다.
당시 91세가 된 펠트는 치매 상태였다. 그의 가족이 공개를 한 것인데, 이 문제를 놓고 당시 펠트를 접촉했던 우드워드는 고민했다. 영원히 익명으로 처리하겠다고 했던 취재원과의 약속 때문이었다. 결국 고민 끝에 펠트가 맞다고 사실 확인을 해주지만, 이 에피소드는 언론의 생명이 신뢰라는 걸 말해준다. 자기 조직의 내부고발을 하고 싶어도 익명 보장이 안될까봐 기자에게 정보를 주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익명으로 처리해주기로 했으면 기자가 그것 때문에 감옥에 가는 한이 있더라도 그 약속은 지켜야 한다. 우드워드는 33년간 그 약속을 지킴으로써 언론의 신뢰도를 높이는 데엔 기여했지만, 워터게이트 취재는 미국 언론계에 익명 취재원을 범람케 하는 부작용을 초래하고 말았다.
▲ 내부고발 익명의 부작용
한국 언론계도 익명 취재원의 범람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내부고발성 제보 때문에 익명 취재원이 많다면야 얼마나 좋겠는가만서도 그게 아니라 아예 상습적인 관행이 돼 버렸으니 그게 문제다. 그렇다고 언론 탓만 하기도 어렵다. 심지어 널리 공개된 사실에 지나지 않는 발언을 하는 공직자들조차 자기 이름을 밝히는 걸 한사코 거부하니 기자들로선 죽을 맛이다.
우드워드와 번스틴을 스타를 넘어서 영웅으로까지 만들고 엄청난 금전적 보상까지 해주는 미국의 '유명인사 문화'는 부러워할 것도 아니고 흉내낼 것도 아니지만, 우리 언론의 경우 보상이 너무 약하다는 생각은 지울 길이 없다. 순교를 하라고 등을 떠미는 게 아니라면, 권력과 싸우는 기자들을 격려하고 지원하는 최소한의 보상 체제는 갖추어야 하는 게 아닌가. 지역언론 발전을 위해 우리 모두 고민해볼 문제다.
/강준만(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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