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작가 레이몬드 카버의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이라는 단편소설엔 아이를 잃은 젊은 부부 한 쌍이 등장한다. 그들 부부의 아이가 세상을 뜬 것은 우연한 교통사고 때문인데, 그날은 마침 아이의 여덟번째 생일날이기도 했다. 아이의 갑작스러운 사고 때문에 미리 주문해놓은 생일케이크 따위는 잊어버린 채 슬픔에 빠져 있던 부부에게 제과점 주인은 왜 만들어놓은 케이크를 찾아가지 않느냐며 화를 낸다. 제과점 주인은 당연하게도 아이가 죽었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고, 그래서 그들이 주문만 해놓고 케이크를 찾아가지 않는, 무책임한 손님들이라고 생각했다. 결국 작품 말미에 가서야 사정을 알게 된 제과점 주인은, 젊은 부부에게 사과하며 자신이 만든 롤빵을 내민다. 그러면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뭘 좀 드시고 기운을 차리는 게 좋겠소. 이럴 때 뭘 좀 먹는 일이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될 거요.' 스토리로서만 바라보자면 어쩌면 제목 그대로 별것 없는, 밋밋하기까지 한 이 이야기가 감동스러운 것은, 슬픔과 허기를 같은 위치에 두고, 허기를 통해 슬픔을, 슬픔을 통해 허기를 이해하게 만드는 작가의 시선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아이를 잃은 슬픔 때문에 아무것도 먹지 않았을 것이 뻔한 부부에게 내미는 롤빵은, 세상 그 어떤 말보다 더 큰 위로가 되고, 커다란 도움이 된다. 어쩌면 작가는 그 빵을 통해서 누군가가 누군가를 이해하고 위로하는 일에 대해서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소설 속 아이의 엄마는 그 자리에서 롤빵을 세 개나 먹는 것으로 묘사됐다. 개인적으론 그 부분이 소설에서 가장 슬펐다. 아이를 잃고 롤빵을 세 개나 먹을 수밖에 없는 엄마. 그녀의 허기.
지난주엔 일 년 가까이 지연되었던 용산참사 희생자들의 장례식이 있었다. 그리고 다음주 수요일은 그들이 세상을 떠난 지 꼭 일 년이 되는 날이기도 하다. 그들의 장례식이 치러진 다음다음날, 어느 한 신문의 사설에선 유가족이 받은 보상금이 1인당 6억원이라는 액수를 강조하며, 그 대가를 대한민국 국민이 두고두고 치를 것이라고 일갈했다. 장례식 전전날엔 역시 사설을 통해 희생자들이 정당한 공무집행에 맞서 불법 폭력행위를 일삼다 숨진 사람들임을 강조했다. 사설을 쓰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 순 없으나, 정말이지 꼭 누구인지 알아내어 이름 석 자를 똑똑히 기억하고 싶은 심정이다. 사람이 무려 다섯 명이나 불에 타 죽은 일이었다. 누군가의 아버지, 누군가의 남편, 누군가의 아들이 죽은 일이었다. 정파적 입장을 떠나서, 사람들이 죽은 자리에, 죽은 사람들이 떠나는 자리에, 꼭 그런 말들을 쏟아내야 했는지 묻지 않을 수가 없다. 이것은 예의를 묻는 것이 아니다. 당신이 과연 누구의 아버지, 누구의 남편, 누구의 아들인가를 묻는 질문이다.
자신과는 전혀 무관한, 용산참사에 관련된 법정에 꼬박꼬박 참석한 어느 한 후배작가의 글을 보면, 용산역세권 재개발로 인해 발생하는 건설사의 이익은 일조 사천억원이고, 조합원의 이익은 천팔백억원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그 막대한 이익을 위해서 권리금과 시설투자비 포함 이억 육천만원이 투자된 음식점 주인에겐 이주보상비로 오천만원이 나왔고, 일억 이천만원이 들어간 중국집 주인에겐 육천만원을 주겠으니 나가라고 했단다. 엊그제까지 평범한 중국집 주인이었고, 갈비집 주인이었던, 누군가의 아버지이자 남편이자 아들들은 그래서 이름도 생경한 '전철연'에 가입했고, 아내의 귀를 때려 바닥에 쓰러뜨린 다음 배를 걷어차는, 깡패용역들에 맞서 망루에 올라갔다. 그들이 사고(이 단어는 쓰고 싶지 않으나, 참고 쓴다)로 죽었다. 남은 가족들은 그 죽음이 억울해, 희생자들을 냉동고에 보관한 채 일 년 남짓 거리에서 싸워왔다. 그리고 끝내, 어쩌면 사건의 일차적 책임이 있는 재개발조합 측과 합의를 하게 되었다. 아이를 잃고 롤빵을 세 개나 먹은 소설 속 엄마와는 같을 수 없겠지만, 유가족들이 받은 합의금엔 돈으로 환산될 수 없는 어떤 비릿한 아픔 같은 것들이 포함되어 있다. 그것이 과연 '떼를 써서' 받은 돈처럼 보이는가? 그 돈이 과연 금액으로, 1인당 얼마 하는 식으로, 셈할 수 있는 돈으로 보이는가?
우리가 어느 한 사건, 어느 한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선 그 사건 속으로 보다 더 깊숙이 들어가야 한다. 그 노력 다음에, 우리는 어렵게 말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았을 때, 우리는 최소한 침묵을 지켜야 한다. 사람이 죽었을 땐 특히 그렇다. 그것이야말로 때론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일이기 때문이다.
/이기호(소설가·광주대 문예창작과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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