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와 운동병행이라는 시대적 경향으로 인해 최근 달라진 체육계의 현상 중에 하나가 운동선수출신들의 고시합격이다. 물론 아직은 그 숫자가 4-5명 수준에 불과하지만 고무적인 현상이라 할 수 있다. 중·고 시절 운동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최하위권의 성적을 받았다하더라도 본인의 노력여하에 따라서는 고시도 합격할 수 있다는 희망의 증거를 보여주었다. 합격한 이들이 하나같이 이야기하는 것이, 공학이었다면 애초에 불가능했겠지만, 사회과학영역이라 '체력'을 믿고 도전했다고 한다. 바꾸어 이야기하면 외우기만 하면 된다는 뜻도 있다. 그렇다고 해도 고시합격이 물론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사법고시 합격생 중에서도 우리사회에서 아직도 최고 엘리트집단으로 인정받고 있는 것이 판사와 검사이다.
최근 우리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검찰과 법원의 논쟁을 보면서, 이해하기 힘든 점이 있다. 적어도 엘리트 집단끼리의 논쟁이라면 보다 논리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검찰과 법원의 마찰 과정에서 전혀 상관없는 '우리법 연구회'문제가 뜬금없이 튀어나오고 있다. 미네르바, 정연주 전 한국방송 사장, 야간 촛불집회,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 전교조 시국선언, 강기갑 민노당 대표, 피디수첩 사건은 모두 우리법연구회와 무관한 판사들이 선고했다. 법원이 어떤 집단인가. 기본적으로 보수적인 가치에 충실한 대표적인 집단이다. 왜냐하면 사법부는 기존질서를 지키는 역할을 주로 수행하기 때문이다. 나름대로 진보적이라는 유럽에서도 마찬가지이고, 미국 또한 예외 없이 사법부는 보수적이다. 게다가 판사는 독립적이긴 하지만 판단의 준거는 기본적으로 판례이기 때문에, 큰 틀에서 과거의 관행으로부터 벗어나기 힘들다. 일반 판사가 선고한 7건이 모두 무죄판결을 받았다면, 답은 검찰의 무리한 기소 때문이다. 논쟁의 핵심은 기소내용에 대한 법리적 문제가 되어야함에도 불구하고 전혀 상관없는 집단을 마녀 사냥하는 것이 21C 선진인류국가를 지향하는 대한민국에서 가능하다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물론 검찰은 '정치적 판결'이라 주장하면서 법원에 불만을 토로했지, '우리법 연구회'를 지칭한 적도 없고, 공격한 적도 없다. 진짜 정치적으로 이용한 집단은 '우리법연구회'와 이번 7대 무죄판결이 전혀 상관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문제를 제기한 거대언론과 여당이다. 검찰입장에서는 조금 억울할 수도 있지만 이 와중에 검찰이 궁지에 몰리고 있는 것은, 살아있는 권력에 대항 못하고 '복종'만 해온 역사 때문이다. 검찰이 '정권으로부터 부여받은 수사'에 충실한 느낌을 주고 있는 것은 필자만의 생각이 아닐 것이다. 오죽했으면 지난해 1월 피디수첩 수사를 책임진 주임 검사가 "정부 비판을 명예훼손으로 기소할 수 없다"며 사실상 양심선언을 하고 사퇴했겠는가. 이번 검찰과 법원의 논쟁에서 자기반성이 필요한 집단은 검찰이다.
"수십 년 검찰역사 속에서, 국민에게 긍정적으로 각인된 검사를 배출한 경험이 없는 검찰. 기소독점이라는 절대 권력을 소유했으면서도, 그 칼을 힘없는 백성과 집단에게만 휘둘러온 검찰. 도쿄지검 특수부가 집권 민주당의 실세인 오자와 이치로 간사장의 정치 자금을 수사 중인데 비해, 죽은 권력에만 칼을 들이대는 검찰. '거악'과 싸우기는커녕 '거악'과 결탁한 검찰" 이것은 필자의 주장이 아니라, 검사 출신의 김용철 변호사가 새로 출간한 책에서 밝힌, 오늘날 검찰의 자화상이다. 검사도 인간이기에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찌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국민의 공복(公僕)이라면, 최소한 역사를 두려워 할 줄도 알아야 한다. 검찰조직에서 질서, 충성, 의리, 복종 같은 단어가 유의미한 가치로 계속 인정받는 현실이 안타깝다. 이러한 가치는 필자가 몸담고 있는 체육계에서도 퇴출된 용어이다. 검찰 깃발에 그려진 칼과 대나무가 진정한 검찰의 상징이 되기를 고대한다.
/전용배(동명대 체육학과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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