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저 소나무들이 사라졌지만 저때만 해도 휘영청 큰 소나무들이 연못의 한편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 소나무에 낭창거린 그네를 매고 여인네들이 하늘 높이 솟는 것도 볼 수 있었고 다른 한편에서는 남정네들의 씨름판이 벌어진 것도 볼 수 있었다. 뿐인가 연못 일대엔 난전(亂廛)이 서고 북장구 소리, 노래 소리가 건지산 가달산에 펑퍼지다가 반공에 솟기도 하였다. 연못의 북쪽 수문께는 차일이 처지고 그 안에선 반나의 여인들이 머리를 감기도 하였다. 연못가엔 창포가 많아 그 수문으로 흐른 물에 목욕하면 부스럼이 나지 않고 편두통도 앓지 않는다고 했다."
시조시인이자 수필가인 최승범 선생의 대학시절 단오날의 덕진연못 주변 풍경에 대한 기억이다. 송화섭 전주대 교수 역시 "지금도 단오날에 덕진연못을 찾아 물맞이하는 사람들의 추억은 선명하다. 아마도 전주에 살아왔던 청장년들은 어렸을 때 어머니 손에 이끌려 덕진연못에서 발가벗고 목욕하지 않은 사람들은 별로 없을 것이다."며 "전라선 완행열차를 타고 단오날에 덕진연못을 다니던 전주 인근지역 노인들은 지금도 덕진연못에 찾고 있다. 이들에게 덕진연못의 단오난장은 큰굿이요, 물맞이는 통과의례였다." 라고 말한다.
2010년 51회째를 맞는 '전주단오'는 풍남문화법인(이사장 문치상) 주관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 역사를 살펴보면 1959년 전주시민의 날을 단오날인 음력 5월 5일로 정하면서 부터라고 할 수 있다.
이후 1967년 풍남문 중건 200주년을 기념하여 '풍남제'로 명칭이 지정된다. 그러던 중 2000년 전주국제영화제, 종이축제 등 축제 통합운영의 명분으로 개최 일자를 5월 1일로 변경한다. 이어서 2002년에는 전주풍남제 개최장소가 종합경기장에서 풍남문 태조로 일대로 변경된다. 2004년에는 전주단오제가 병행 개최된다. 몇 해를 더 전주한옥마을에서 '전주풍남제' 라는 이름으로 열렸다. 그리고 2007년 행사명 '전주단오예술제'와 '전주천년의맛잔치'로 분리·변경되어 치러지기에 이른다. 이로써 어떤 의미에서는 50년 가까이 이어져오던 풍남제는 사라지게 된 셈이다. 2008년 '전주단오'로 행사명이 다시 한 번 바뀌고 2009년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 국민장 관계로 '전주단오' 행사는 치러지지 못했다. 2010년에는 줄어든 예산 관계상 1~2일 정도 짧은 기간 동안 추진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이는 예산은 늘지 않고 봄에는 '전주단오', 가을에는 '전주천년의맛잔치'를 추진하는 것과도 무관하지 않다.
이 과정에서 개최기간은 8일에서 2일까지 그 해 그 해 달랐다. 풍남문화법인 정진수 팀장에 따르면 올해 예산은 작년예산 1억5000만원에서 좀더 삭감된 1억2000만원 정도라고 한다. 90년대 10억원 가까운 예산규모로 치른 행사도 있었다고 하고, 행사 주관기관 역시도 중간에 바뀌기도 했다고 하니, 전주 단오의 역사는 변화무쌍 그 자체이고 그 편차가 너무 큰 것이 아닐 수 없다. 개최기간은 짧아지고, 예산은 줄어들고, 주관단체와 그 속에서 일하는 인력들은 바뀌어온 셈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전주단오의 역사성이 이어져오기를 기대할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물론 전주단오가 풍남제나 전주단오제 행사 하나라고는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동안의 자료를 살펴보면 전주단오는 '전주풍남제'나 '전주단오제'라는 행사 안팎에서 펼쳐짐으로써 이어져 왔다고 할 수 있다.
2000년을 전후하는 이즈음부터 전라세시풍속보존회(회장 신정일) 등 전주단오 복원에 뜻을 둔 단체들이 '견훤대왕제'를 열었다. 전주단오제에 견훤대왕제를 올린 것은 전주가 후백제의 궁터였던 탓이다. 견훤의 무덤은 충남논산시 연무읍에 있는데 이곳에서 혼백을 불러 후백제의 왕궁이 있던 전주물왕물(전주 중노송동 2가 사무소터)에 들러 제사도 올렸다. 그리고 삼국통일의 뜻을 이루지 못한 채 비극적인 최후를 맞은 백제의 견훤대왕을 추모하는 씻김굿을 하며 지역의 화합과 안녕을 기원했다. 단오에는 지역마다 별신을 모셔 굿을 올렸는데 경남 고성의 성황제, 삼척의 오금비녀제, 경남의 문호장굿 등이 있다.
또 전주단오제복원추진위원회 등 여러 단체가 힘을 합쳐 전주의 성황신 김부대왕(경순왕) 일가 5위에게 제사를 올리는 성황제와 덕진연못 물로 몸을 씻는 물맞이행사를 하기도 했다.
전주 성황제는 군경묘지 승암산 근처 옛 성황사 부근에서 시작하여 초헌관, 아헌관, 종헌관을 선정해 유교식 제사를 먼저 치른 뒤 무속식 성황제를 진행하고, 신목에 성황신을 강신시킨 후 신목을 받들고 영신행렬(성황사지→군경묘지 앞→전통문화센터→공예품전시관→전북대 구정문→덕진연못)을 하는 전통행사다.
한편에서는 전통적으로 이어오던 단오차례를 지낸 뒤 이웃들과 함께 수리취떡, 앵두 화채, 붕어찜 등 단오 음식을 만들어 나눠 먹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덕진공원 연못 주변에서는 그네뛰기와 씨름 그리고 창포 물 머리감기를 재현하고 임금에게 부채를 올리던 풍속에 따라 노인과 청소년들에게 부채를 선물했다.
실제로 열리지는 않았지만 2009년 '전주단오' 프로그램을 살펴보면 창포물머리감기, 물놀이이벤트로 이루어진 물맞이 행사, 민속놀이 프로그램과 부대행사 성격의 프로그램이 중심을 이루고 전통 제의와 같이 역사성에 기반한 행사는 눈에 띄지 않는다.
오랫동안 전주단오 행사조직을 꿋꿋하게 이끌고 있는 문치상 이사장은 전주단오에 대해 "강릉단오제와 달리 정말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난 것"이라며 "전주단오제가 풍년을 기원하는 풍년제적 성격이 있고 이것이 결국 대동놀이마당의 성격으로 이어진다"라고 전주단오의 성격을 규정한다. 그는 "전주단오의 핵심으로 물맞이행사를 중심에 세울 것이다"며 앞으로의 방향에 대해 설명했다. 그리고 이를 위해 덕진연못의 수질개선과 외래종 창포를 재래종 창포로 조성하는 것이 시급하다는 점도 지적했다.
1만3500평방미터의 창포군락지가 조성된 완주군 고산면 소향리 '창포체험마을'을 운영하는 노재석 위원장은 "전주단오제에 창포체험프로그램으로 참여하고 있고 앞으로도 참여할 예정"이라고 했다. 그는 "그런데 지금까지 전주단오는 핵심이 안보인다. 공연이나 민속놀이를 하는 행사성 프로그램이 중심이라서 아쉬움이 크다. 진짜 문화가 없는 것 같다. 스토리텔링이 될 수 있는 진짜 문화가 살아났으면 좋겠다."고 깊은 애정을 표시했다. 아울러 현재 고산면 소향리에서는 마을축제로 '만경강창포단오놀이'를 추진하고 있으며 이렇게 작은 마을들이 참여해서 전주단오행사를 다 함께 만들어 갔으면 좋겠다는 점도 덧붙였다.
강릉단오제가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받는 데 중추적 역할을 한 임동권 중앙대 명예교수는 「강릉단오제의 회고와 전망」이라는 글을 통해 강릉단오제의 추진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그 핵심은 '유적지 보존(발굴)', '성황제와 굿 등 제의의 원형보존', 그리고 마지막으로 '설화발굴'에 있음을 강조했다. 유적을 보존하는 것은 문화유산의 증거물이 되고 확실성·신빙성을 제시해주며 후손들도 원형에 접근할 있게 된다는 것이다. 원형보존과 설화발굴은 실제 프로그램 구성의 재료가 될 수 있으며 스토리텔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지적이다. 역사성이 부족한 전주단오의 현주소를 감안할 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전주단오의 나아갈 방향에 대해서 수차례 학술세미나 등을 통해 좋은 의견들이 쏟아졌고, 전주단오가 지나온 길에 지혜가 담겨있으니 좋은 의견들을 예전처럼 뒤풀이해서 방치하지 않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그동안의 의견들을 일관성 있게 모아내고 이를 뒷받침하는 시민, 문화계, 학계, 언론, 행정이 얼마나 한 방향으로 나아가느냐가 관건이다. 그렇게 하기위해서는 이를 견인해야하는 흔들리지 않는 주체의 역할 먼저일 것이다.
"에헤야 헤야 헤- 어야라 우리들 단오일이로다 그네를 뛰러 어서가세 / 창포장 꽃 바람에 금박 댕기도 너울너울 / 그네를 뛰는 단오놀이 일년에도 한 번 일세"
민요 '추천 단오 놀이' 전반부이다. 전주단오가 이 노래에 담긴 흥과 신명을 넘어 미래를 열어가는 전통이 살아 숨 쉬는 문화콘텐츠로 거듭나기를 기대해본다.
/ 양승수 문화전문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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