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에 받은 질문(놀람과 동시에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요리도 해요?"
너무 당황하게 만들어 그냥 웃고 넘겼지만, 소심하기 짝이 없는 나를 잠 못 이루게 만들었다. 밤에 이불을 뒤집어쓰고, 오른손으로 수를 몇 번이고 세어보니 식품학 책을 펼친 지 벌써 18년차다.
그런데 그리 보이지 않는 이유가 뭔지 생각해봤다.
프라이팬에 데고, 음식에 상한 이와 무너진 잇몸으로 치과 치료를 받던 아픔과 간보느라 몸무게만 늘었던 그간의 시간이 억울했다. 고정관념일지라도 요리하는 사람들만의 이미지가 있는지도 생각해 봤다. 내 짧은 손톱이 요리하는 사람의 티를 100% 내고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아니었나 보다.
20대에 아무것도 모르면서 사찰음식을 배우러 다니던 시절이 생각난다.
왜 처음 배운 요리가 사찰음식인지는 모르겠지만, 2시간동안 버스를 타고 가서 기껏 1시간을 배우고, 다시 2시간동안 버스를 타고 되돌아왔다. 갔다 와서 레시피 정리하고 나면, 쓰러져 잠들었다. 스님께 배워서 그런지 긴장이 몇 배는 되었던 모양이다. 그 당시 나에게 '레시피'라는 것은 정리한 노트를 열쇠가 있는 서랍에 넣어 두어야 마음이 놓이는 내가 가진 유일한 문서(?)였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컴퓨터에 저장을 해 둘 때도, 어차피 혼자 쓰는 컴퓨터를 누가 본다고 비밀번호를 입력해두었는지 지금 생각해보면 아주 당돌한 여학생이었다. 지금에야 인터넷으로 찾으면 모든 레시피가 아주 자세하게 나오지만, 그 땐 표준화된 레시피보다는 손맛과 비법을 강조하던 때였기 때문에 멀더라도 찾아가 배울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끝이 보이지 않는 요리를 배우고 가르치고 있지만, 결론은 이 세상 요리에 비법이란 없다는 것이다. 물론 만드는 방법은 있겠지만 비밀스런 그 무언가는 없다는 것이다. 있다할지라도 그 비밀의 열쇠는 최상의 식재료와 요리하는 사람의 정직한 기운뿐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것을 유난을 떨며 레시피를 사수하고, 비법을 찾으러 다니던 어리석은 자가 바로 필자였다. 그러다보니 늘 몇 그램, 몇 큰 술에 연연하게 되고, 음식을 만들어도 맛이 늘 같은 것이 아니라 달라서 음식을 버리고 고민하던 시간을 보냈다.
이유는 제일 중요한 주요 식재료가 다르고, 맛 하나만 생각하니 간신히 맛을 흉내는 낼지언정 깊이가 없는 것을 비법을 가르쳐 주지 않은 선생님들의 탓으로 돌리기도 했었다.
레시피를 기록해야한다거나 비법을 물으면 기겁을 하는 분이 있다. 바로 나의 어머니다. 어머니는 내게 있어서 요리의 '히든카드'다.
전에도 언급했듯 세련된 '채식주의자'가 아니라 고기는 비린내가 나서 못 드시는 촌스러운 식성을 가졌지만, 간도 보지 않고 육류요리를 한다.
우리 집에서 만큼은 최고의 맛을 자랑하는 선짓국을 끓이실 때면 나는 옆에서 조용히 저울과 메모지를 내민다. 냄비에 넣는 모든 양념을 정확하게 적고, 계량을 해야 한다고 하면 하시는 말씀이 "넣는 것도 없는데 뭘 저울에 달아?" 그래도 적어야한다고 하면 "똑똑한 딸 때문에 귀찮네!"라면서도 얼마 후 메모지를 보면 어김없이 적혀 있다.
그리고 만드는 방법을 물으면 "짐(김)이 폭신 오르면 불에서 내려" "물은 훙덩훙덩하게 부어""째께(조금)만 넣어".
도대체 김이 폭신 오른다는 것은 센불에서 몇 분인지, 훙덩훙덩은 몇 컵을 부어야하는 것인지, 째께는 몇 스푼인지 알 수가 없다. 그래도 여기까지가 어머니가 딸을 위해 해주실 수 있는 최고의 사랑임을 안다.
레시피를 표준화 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작업이 아니다. 특히 한식에 있어서는 말이다. 그럼 먼저 식재료의 단일화를 이뤄내야 하는데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해야 하는 작업임에는 틀림없으나 쉽지 않고, 했다 하더라도 요리하는 사람마다 맛이 다르다. 그건, 바로 요리하는 사람의 기운이 다 다르기 때문이다.
모든 요리가 만드는 방법은 너무 많고, 비법은 없다. 어떻게 만들면 맛이 날까에 대한 질문에 어머니는 "기냥 혀"라며 퉁명스럽게 답한다.
많은 레시피는 여러 번 만들어 내 입맛에 맞게 수정하면 나만의 레시피가 되는 것이고, 없는 요리의 비법을 찾으려 애쓰지는 말자.
/송영애(푸드코디네이터·전주기전대학 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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