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가 한성(漢城)에 도읍 하던 시절의 막바지인 5세기 무렵에 백제인이 만들었음이 분명한 횡혈식 석실분(橫穴式石室墳) 2기가 발견된 서울 서초구 우면동 451번지 일대는 6일 현재 온통 공사판이었다.
남쪽으로 과천시와 인접한 우면산 기슭 아래 형성된 형촌마을이 SH공사가 시행하는 '서초 우면 2지구 국민임대주택' 건설 계획에 따라 지하에 문화재가 매장됐을 가능성이 없는 것으로 판명 난 곳에서는 이미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인 상황이다.
이곳에서 문화재 발굴은 형촌마을 서쪽 구릉과 남쪽 저지대에서 이뤄지고 있었다. 발굴현장 서쪽 인접지점은 과천 쪽에서 예술의전당 쪽으로 관통하는 우면산 터널 진입로가 지난다.
땅이 속살을 완전히 드러낸 발굴현장은 복사열로 가뜩이나 기승을 부리는 무더위를 더욱 부채질하는 듯했다. 여기에 연신 터널을 오가는 차량이 내는 소음도 끊이지 않는다.
조사가 막바지에 이른 지금, 뙤약볕 아래서 한얼문화유산연구원(원장 양윤식) 조사원들은 유구(遺構) 실측 중이었다.
이곳에서 백제 석실분은 전면으로 평야를 조망하고 뒤로는 우면산이 병풍처럼 둘러선 야트막한 구릉 경사면에서 발견됐다. 두 석실분 중 하나는 돌로 쌓아올린 무덤방 네 벽면이 기초 부분이나마 남아있는 데 비해, 다른 하나는 이들 석축까지 완전히 뜯어내진 상태다.
두 석실분 모두 무덤방은 공중에서 내려다본 평면 형태가 방형(方形)이며, 중심축은 남북 방향에 맞췄다. 북쪽 벽면 뒤편에서는 조사단 표현을 빌리면 '눈썹 모양', 즉, 시위를 당긴 활 모양으로 판 도랑 같은 시설인 주구(周溝)가 두 곳 모두 있었던 것 같으나, 조사단이 2호 석실분이라고 명명한 곳에서는 확연히 모습을 드러냈다.
나아가 이들 석실분은 가파른 구릉 언덕을 선택해 먼저 석실을 만들 구덩이인 묘광(墓壙)을 대략 방형으로 넓게 파 들어가 편평하게 한 다음에 돌을 쌓아 석실을 구축했다. 묘광을 만들면서 파낸 흙은 묘광과 벽체 사이를 메우는 데 사용됐다.
현장을 안내한 양윤식 원장과 책임조사원인 김일규 유적조사실장은 다른 백제 석실분인 7호분의 무덤방 석축을 완전히 해체한 까닭을 바닥을 어떻게 만들었는지 보기 위함이라고 말했다.
그 결과 재미있는 현상이 드러났다. 묘광 바닥보다 벽체를 쌓아올린 바닥이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 언뜻 생각하면, 벽체를 쌓을 곳에서는 땅을 더 파고 내려간 다음에 돌을 쌓아올렸을 것 같지만, 전혀 반대되는 현상이 관찰된 것이다.
석실 기준 길이와 폭, 그리고 깊이는 2호분이 374x445x112㎝, 7호분이 297x272x105㎝로 나타났다.
이와 같은 한성도읍기 백제 석실분이 서울에서 발견된 것은 근 수십년래 처음이지만, 아쉽게도 두 고분 모두 온전한 형태가 아니었다. 조사 결과, 두 곳 모두 1997년 개통한 우면산 터널을 만드는 과정에서 상당 부분이 파괴된 것으로 드러났다.
그나마 상대적으로 잘 남은 2호분만 해도, 석실 남쪽 벽면은 절반 이상이 없어져 버렸다. 언제인지 몰라도 두 고분 모두 도굴당한 것도 확실했다.
이밖에 이곳에서는 의미 있는 조사성과가 적지 않았다. 신라시대 석실분은 모두 7기가 발견됐으며, 한성도읍기 집터 또한 모두 9개 동이 발견됐다.
특히 집터 6개 동은 능선 정상 부근에서 발견됐다. 평면 형태는 이 시대 백제계 집터에서 전형적인 凹자형, 혹은 凸자형이었다.
집터 중 '5호 주거지'는 창과 화살촉, 꺾쇠와 같은 철기류 외에도 일반 집터에서 보이는 부엌 시설이 없는 대신 화로가 있었던 흔적과 그 주변으로 철 찌꺼기인 슬래그가 확인됐다는 점도 시선을 끌었다.
김 실장은 대장간과 같은 철기를 만들어내던 공방(工房)이 있던 곳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이번에 확인한 유구 중에서도 백제 석실분만큼은 현지에서 보존할지, 이전 복원할지 고민을 낳는다. 서울시가 만드는 한성백제박물관으로 이전 복원하는 안도 고려할 수 있겠지만, 현장을 다녀간 한성백제박물관 추진단 사람들의 반응이 영 신통치 않다고 조사단은 귀띔했다.
"글쎄요. 그쪽에서 그렇게 크게 관심을 보이지 않는 것 같아요. 한성백제박물관을 도대체 무엇으로 채우려는지 우리가 상관할 바는 아니지만, 이런 유구나 유물 말고 무엇으로 한성백제를 홍보하려는지 궁금합니다."
주변 일대 문화재 지표조사나 발굴조사 없이 만든 우면산 터널. 그것을 조성하는 과정에서 백제 석실분은 적지 않은 손상을 보았으나, 이에 대해서는 무심한 듯 우면산 터널은 통과 차량에 대해 경차 1천원, 소형ㆍ중형차 2천원의 통행료를 받는 데 여념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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