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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을 수 없는 밥상] ⑨박시도 전주전통술박물관 관장

호박볶음 갈치조림 곁들인 아내 밥상 최고…순창 자생차밭서 딴 녹차 슴슴하지만 여운 깊은 술도 좋아

박관장은 아내 정정숙씨가 제철음식으로 차려내는 밥상을 다문 한정식으로 내놓았다. ([email protected])

24일 오후 6시 사람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전주시 교동의 문화공간 다문(茶門)은 한가로웠다. 다문은 멋스런 전통의 맥을 되짚고, 생활과 접목시키는 작업에 소매를 걷어부친 문화 게릴라들의 공간이기도 했다. 이곳을 운영하고 있는 박시도 전주전통술박물관 관장(46)은 누구에게나 자신이 가진 것을 기꺼이 내어줄 것 같은 후덕한 아저씨 인상이다.

 

 

"음식은 나눔이 기본이잖아요. 29~30살 때부터 지인들과 한 달에 한 번 잔치를 열었습니다. 그런데 단순히 한 달에 한 번 먹고 놀자는 게 아니라, 전통문화를 보급하면서 삶의 의미를 찾아가자는 데 목적을 뒀어요. 참여자들은 한 사람당 만 원씩 내도록 했구요. 지금으로 말하면 '만 원의 행복 찾기'였습니다."

 

그가 지인들과 다문을 빚고 만들면서 우리 문화에 쏟은 공력이 녹록치가 않다. 매월 문화토론이나 강좌를 열었고, 매달 공연이나 전시를 가졌다. 이 가운데 차문화 보급과 산조 예술제가 대표적. 그는 차문화의 대중화를 위해 차씨 심기, 차 따기 등을 열고 전통차 보급운동을 벌였으며, 2000년에는 오목대에서 대규모 차나무 군락지를 발견하기도 했다.

 

"차는 평생을 함께하는 친구나 마찬가지에요.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를 연결시켜주는 게 음식이고, 술이고 차니까요. 그게 없으면 참 재미없는 인생이겠구나 싶어요. 다문에서 음식과 차를, 술박물관에서 전통 가양주를 내놓을 수 있으니, 더할 나위가 없이 좋죠."

 

차를 즐기다가 아내 정정숙씨와 전주 오거리에 있던 찻집'다문'을 인수한 그는 전주한옥마을에 터를 잡아 정갈한 한정식을 내놓았다. 제철 음식을 함께 나누자는 데서 출발했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아내씨가 차려준 밥상 역시 제철 음식으로 간소하게 차린 것이다.

 

"잡식성이라 다 좋아하는데, 입이 좀 짧아요. 맛깔스런 반찬만 두 서너가지만 있는 밥상을 좋아합니다. 새우젓이 곁들여진 호박나물 볶음과 갈치조림, 김치를 곁들인 상이면 충분해요. 담백한 맛이 입을 즐겁게 합니다."

 

그는 "적은 양을 가지고 한 끼 식사를 했을 때 그 충만감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가 없다"며 "누군가 나를 위해 오롯이 정성을 담은 음식은 이렇듯 감동을 준다"고 말했다.

 

차문화 보급도 전통문화 되살리기의 대안으로서 더없이 소중한 의미다. 잊을 수 없는 맛은 순창 적성면 강경마을 자생차밭에서 딴 녹차. 그는 "활엽수 빽빽히 들어선 산등성이에 펼쳐지는 차나무 군락을 발견했을 때의 기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며 "비비고 덖은 차잎으로 차를 타면 강하면서도 깊고, 입안에 여운이 남는다"고 했다. 활엽수의 씩씩한 기운을 마시고 자란 차나무잎은 맛도 다르다는 설명이다.

 

술도 빠질 수 없는 법. 전주전통술박물관 관장을 4년 맡아온 그는 쌀과 누룩이 만나 발효됐을 때의 술은 입안에서 오래 가지고 싶은 느낌의 술이라고 했다. 달콤하고 향기로운 술에 길들여진 이들은 인공 첨가제가 들어가지 않아 슴슴해하만, 입안에 오랫동안 머금고 싶은 맛이라는 것이다. 마치 사랑하는 사람과 첫 키스를 해 본 느낌처럼 잊혀지지 않는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맥주 한 병만 갖고도 재밌게 놀잖아요. 전통 가양주 한 잔을 걸치면서 밤새워 이야기할 수는 없을까요? 우리 술에 대한 관심도 참 소홀히 해온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현재 기네스 생맥주가 1만6500원인데요, 우리 막걸리를 이 가격에 먹으라고 하면 몇이나 찾을까요? 하지만 저는 그 이상을 주고도 먹을 수 있는 문화가 돼야 한다고 봅니다."

 

그는 이어 "막걸리 열풍을 지켜보면서 제대로 만든 우리 술이 정착됐으면 좋겠다"며 "이것은 우리 농촌의 원형성을 찾아가는 데에도 한 몫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기존의 시스템을 한 순간에 뒤엎을 수는 없잖아요. 이젠 싸워서 쟁취하는 시대는 지났습니다. 이젠 유쾌한 혁명을 꿈꿀 때에요. 음식문화든, 차문화든, 술문화든 사람들과 함께 나누면서 전통에 대한 관심을 꼭 환기시킬 겁니다."

 

이화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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