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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혁의 글씨로 만나는 옛 글] (56) 황초령 진흥왕순수비(2)

완당전집에 실려 있는 황초령비 석문

황초령 진흥왕순수비가 추사 김정희의 치밀한 고증을 통하여 역사에 다시 등장하게 된 배경에 대해서는 앞서 설명하였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누가 발견하였느냐 하는 것보다 그것을 얼마나 정밀하게 판독하고 역사적 의미를 부여하였느냐 하는 것이다. 역사유물 뿐만 아니라 세상에 존재하는 사물에 대해서도 그렇다. 어떤 사물에 대하여 의미를 부여할 때 비로소 그것은 새로운 가치를 지닌다. 추사의 경우도 그런 경우에 다름 아니다. 이전에도 많은 호사가와 금석가들의 눈을 거쳤지만 그에 대한 치밀한 역사적 해명이나 금석학적 의미는 부여되지 않았다. 설령 있었다 하더라도 결국 추사에 미치지 못한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사물이 구안자의 눈을 통하여 그 가치가 재발견된다는 사실을 추사의 경우를 통하여 확인할 수 있다.

 

당시 추사는 북청에 유배되어 있었기 때문에 예전처럼 비문을 찾아 직접 확인할 수 있는 처지가 못되었다. 그러나 그에게는 언제나 뜻을 같이 하는 많은 벗이 있었고, 그들의 배려에 힘입어 금석서화에 대한 연구를 계속할 수 있었다. 정황으로 보아, 추사는 북청에 유배되기 이전에 이미 황초령비 탁본을 입수한 것으로 보인다. 오랜 시간을 두고 이를 완상한 추사는 마침내 비문에 대한 치밀한 문헌고증을 가하기에 이른다. 완전한 상태가 아닌 2단의 비편 탁본을 토대로 석문(釋文·비문을 판독하는 것)을 작성하고, 문자의 역사적 의미를 해명하면서 이전에 간과했던 새로운 사실들이 비로소 밝혀지게 되었다.

 

우선 추사가 비편을 고증한 결과, 비문 12행 중 완전한 글자 239자, 불완전한 글자 13자, 그리고 깎인 글자 17자, 빈칸이 셋으로 총 2백 72자라고 밝혔다. 비석의 상단은 이미 망실되어 그 규수(圭首)와 전액(篆額)은 알 수 없다고 하면서도, 북한산 진흥왕순수비처럼 규수를 만들지 않았을 것이라고 추정하였다. 추사는 석문을 작성한 후, 치밀하게 문헌고증을 가하고 있는데 그 중에서 중요한 내용을 간추려 소개한다. 이전에 서술한 바와 같이, 추사는 비문의 첫머리에 연대를 추정할 수 있는 기년이 보이므로 진흥왕 29년 무자(戊子)에 세워졌다는 것을 확정한다. 이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사실이다. 그런데 추사는 다음에 보이는 '眞興太王巡狩管境刊石銘記也'라는 첫 행에 의문을 제기한다. 이 구절을 보고 누구나 진흥왕이 순수를 행하면서 세운 비석이며, 그것이 진흥왕 29년 8월 21일이었다는 데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추사의 의문은 이 비가 진흥왕대에 세워진 것이 사실이라면, 비문의 '진흥'이라는 두 글자는 왕이 죽은 다음에 내리는 시호(諡號)가 아니라 생전의 호칭이라는 것이다. 「삼국사기」 진흥왕본기 37년조에 '왕이 훙(薨)하였다. 시호를 진흥(眞興)이라 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것이 비문의 기록과 부합되지 않기 때문이다. 황초령비는 진흥왕이 생존시에 스스로 만들어 세운 것인데도 엄연히 진흥대왕이라 칭하였고, 역시 북한산비에도 '진흥'이란 두 글자가 있는 것으로 보아, 신라왕 중에서 진흥이나 법흥은 시호가 아닌 생존시의 칭호라는 점을 처음으로 밝혀낸다. 추사는 태종무열왕 이후에 비로소 시법(諡法)이 있었다고 주장한다.

 

또 '진흥왕이 어려서 즉위하여 일심으로 불교를 받들었고, 말년에는 머리를 깎고 승복을 입고 스스로 법운(法雲)이라 호하여 여생을 마쳤다'는 기록과 '진흥왕 12년에 혜량법사를 사주(寺主)로 삼았고, 안장법사를 대서성(大書省)에 임명하였다'는 기록에 근거하여, 비문의 '沙門道人法藏慧忍'이 대신들보다 위에 기록된 것은 그들을 높였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이밖에도 신라의 관등에 관하여 탁월한 변석을 가함으로써, 비의 역사적 가치를 부여하였다. 추사의 고증을 통하여 비로소 금석이 하나의 '學'으로서 정립되었던 것이다.

 

/ 이은혁(전주대 한문교육과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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