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드미트리 미트로폴로스 콩쿠르에 참가한 15살의 소년은 연습실에서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제3번을 연주하고 있었다.
이를 우연히 들은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상임 지휘자였던 번스타인은 콩쿠르 주최 측에 "저 아이를 도와줘라"고 말했고, 이후 소년은 전액 장학금을 받고 줄리아드 음악원에 입학하는 등 미국에서 음악 공부를 시작할 수 있었다.
이렇게 콩쿠르를 준비하던 소년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피아니스트가 돼 최근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은관문화훈장을 받은 백건우는 2일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라흐마니노프 협주곡 제3번과의 인연을 소개했다.
"협주곡 제3번은 라흐마니노프가 러시아에서 미국으로 건너가면서 쓴 야심작입니다. 저도 처음 미국에 갈 때 이 곡을 준비했고 이후에도 중요한 무대가 있으면 이 곡을 연주하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제2번보다 이 곡을 더 많이 연주하게 됐네요. 이 곡은 프로코피예프 협주곡 제2번과 브람스 협주곡 제1번처럼 연주할 때마다 새로운 무언가를 발견하게 되는 곡입니다."
백건우는 오는 13일 오후 8시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지휘자 주빈 메타가 이끄는 이스라엘 필하모닉과 이 곡을 연주한다.
그는 "이스라엘에서 훌륭한 바이올리니스트가 많이 배출됐듯이 이스라엘 필하모닉은 현이 훌륭한 오케스트라다. 주빈 메타와 인연은 없었지만 동양인으로서 세계적인 지휘자 반열에 오른 것은 대단한 일"이라며 협연에 대한 기대감을 나타냈다.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전곡뿐 아니라 라벨과 스크랴빈, 프로코피예프, 메시앙, 베토벤 등 특정 작곡가를 집중 탐구하는 연주로 '건반 위의 구도자'로 불리는 그는 특히 몇 년 전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전곡(32곡)을 연주하면서 음악적으로 큰 변화를 겪게 됐다고 했다.
베토벤 전곡 연주를 끝내고 나서 한동안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아 불안하기도 했지만 1년 정도 지난 뒤에는 음악과 좀더 가까워졌다는 것을 느끼게 됐다고 전했다.
"어떤 연주자는 젊을 때 화려하게 만개하는 반면 어떤 연주자는 50세가 넘어서 농익은 음악을 연주합니다. 베토벤 소나타 전곡 연주는 제게 상상하지도 못했던 변화를 선물했습니다. 베토벤의 작품이 워낙 훌륭하기도 하지만 이제는 악보를 펼치면 전과 달리 음악적 언어와 구성이 명확하게 보입니다."
그는 "음악은 거울이기 때문에 거짓이 통하지 않는다. 좋은 음악을 위해서는 타고난 재주뿐 아니라 음악에 대한 태도, 인간성 연마 등 요구되는 점이 참 많다. 진정성을 가지고 음악 연주를 하는지 아니면 쉽게 명예를 얻으려고 하는 것인지 끊임없이 자문해야 훌륭한 음악인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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