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이 뒤숭숭하다. 태광그룹, C&그룹, 한화그룹에 대한 조사에서 검찰 사정의 칼날이 비리 정치인을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설상가상으로 청목회가 청원경찰법 개정과 관련해 다수의 여야 국회의원들에게 거액의 후원금을 주고 불법 로비를 했다는 정황이 드러나면서 정치권이 바짝 긴장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 한나라당은 2013년부터 시행되는 소득·법인세 최고 세율 인하 철회를 둘러싸고 내홍이 깊어지고 있다. 더욱이, 한나라당 일부 소장파 의원들이 청와대측의 감세 기조 불변 입장에도 불구하고 '감세철회 촉구를 위한 의원총회 소집요구' 서명을 받고 있어 파장이 확산되고 있다. 감세 철회를 주장하는 측은 "부자·대기업 중심의 정책 노선을 친서민 정책 노선으로 수정해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 서민·중도층 표심을 잡아야 한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한편, 감세 유지를 지지하는 측은 "감세는 현 정권의 핵심 정책 기조인 만큼 이를 철회하는 것은 현 정부와 한나라당의 정체성을 훼손시키는 것이다"는 점을 지적한다. 여하튼 여당 내에서 부자 감세 철회 논쟁이 제기된 것은 본질적으로 차기 총선과 대선을 의식한 '표' 때문이다.
최근 한나라당에게 충격적인 여론조사 결과가 발표되었다. 한나라당 소장파들의 모임인 민본21 토론회에서 발표된 여론조사에 따르면, 차기 대선에서 박근혜 전대표를 지지한다는 층의 30.4%, 이명박 대통령의 국정 운영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층의 33.6%가 '정권 교체'를 원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표면상으로는 한나라당에게 유리한 국면이 전개되고 있는 듯 하지만 동시에 민심의 밑바닥에는 '정권 교체'에 대한 강력한 욕구가 꿈틀거리고 있다는 것이 확인된 셈이다.
민주당이 마냥 좋아할 만은 일은 아니다. 민주당도 민심의 경고를 받기는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국민들의 정권 교체에 대한 욕구가 크고 보수에 대한 혐오감도 큰 데도 불구하고, 민주당 지지도와 야권 대선 후보 지지도는 상대적으로 낮게 나왔다. 이런 사실은 국민들의 마음속에 아직 민주당이 정권을 맡아도 좋다는 믿음이 생기지 않았다는 반증이다. 손학규 대표 체체가 출범한지 한 달이 지났다. 하지만 처음에 기대했던 만큼의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손대표가 4대강 문제와 사정 정국, 개헌 등 국정 현안에 대해 야당 수장으로서 강경한 입장을 드러내면서 여당과의 대립각을 만들어 당의 존재감을 살렸다는 점은 인정할 만 하다. 하지만 정부 여당이 추진하는 핵심 어젠다에 대한 비판과 반대의 목소리만 냈지 정작 국민들이 공감하는 비전과 어젠다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국민들이 정치권에 요구하는 것은 그리 거창한 것이 아니다. 겸손한 마음으로 국민의 요구에 귀를 기울이면서 원칙과 상식이 통하는 정도의 정치를 하라는 것이다. 국민들로부터 국회가 부패한 집단으로 불신받고 있는 상황에서 어떻게 집권당 대표가 청목회 입법 로비 의혹을 수사하고 있는 검찰을 향해 '좌시하지 않겠다'고 협박성 발언을 할 수 있는가? 오히려 읍참마속의 심정으로 거액의 후원금을 수수한 의원들을 상대로 자체 진상 조사를 실시해 옥석을 가려내는 것이 정도가 아닌가? 당 최고위원회에서 논의되었던 감세 철회가 대통령 경제특보 말 한마디에 어떻게 지도부가 서둘러 논쟁을 중단시킬 수 있는가? 개혁적 중도 보수론을 제기하고 있는 한나라당이라면 감세 철회 주장을 일방적으로 거부할 것이 아니라 생산적인 논쟁을 통해 결론짓는 성숙하고 활력 넘치는 정당으로 거듭나야 하지 않겠는가?
민주당도 다를 바 없다. 외교적 결례를 무릅쓰고 대통령을 '평화의 훼방꾼'으로 몰고 간 의원과 증거를 제시하지 못한 채 면책특권 뒤에 숨어 비방 폭로에 앞장선 의원을 제 식구라고 무조건 감쌀 것이 아니라 국민이 눈높이에 맞춰 잘못된 것이 없는지 냉정하게 살펴봐야 한다. 국정 운영과 관련해서는 사사건건 정면 충돌해온 여야 정치권이 검찰 수사에 대해 한 목소리를 내는 진풍경을 보면서 어떻게 국민들이 대한민국 정치를 신뢰할 수 있겠는가? 정치권은 "어려울때 일수록 기본으로 돌아가라"는 조언을 깊이 귀담아 들어야 할 것이다.
/ 김형준 (명지대 인문교양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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